▲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오늘도 듣고 보는 나의 육신의 수고로움으로 내 영혼은 조금 쉬었을까… 그 물음으로 하루를 열며 닫으며, 나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앉아 있었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2번 ‘부활(Resurrection)’, 그 거대한 시간의 강 속에서 나의 감각은 느리게 잠식되어 갔다. 음악은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침투했고, 그곳에서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생의 근원적 떨림을 다시 들었다. ‘죽음에서 시작된 서사’ 말러는 생애 내내 ‘죽음’과 ‘부활’의 주제를 붙잡은 작곡가였다. 유대계 오스트리아인으로 태어나, 이방인으로 살았던 그는 늘 생의 결핍과 고독을 음악으로 이겨냈다. 그의 교향곡 2번은 단순한 장송곡이 아니다. ‘죽음 이후에도 인간은 노래할 수 있는가’라는 거대한 질문의 변주다. 오늘 과천시립교향악단은 그 물음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해냈다. 지휘자 안두현은 콘서트홀 전체를 하나의 악기로 삼았다.현악의 긴장과 금관의 폭발, 타악의 절묘한 절제… 그의 손끝은 모든 음을 하나의 의식(儀式)처럼 다뤘다. 오케스트라는 소리의 벽을 세우고, 다시 그것을 허무는 순환 속에서.죽음과 생, 어둠과 빛을 오가는 영혼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기억의 멜로디, 인간의 회한’ 두 번째 악장 Andante moderato는 삶의 평화로움 속에 스며든 쓸쓸한 회한의 선율이었다. 말러가 어린 시절 고향의 들녘에서 들었을 법한 왈츠풍의 리듬이 짧은 행복의 기억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곧 사라지는 희미한 빛, 마치 인간이 세상에 잠시 들렀다 떠나는 유한한 생처럼 느껴졌다. 그 짧은 악장 속에서도 관객은 삶의 부서진 잔광을 보았다. 세 번째 악장 Scherzo는 풍자와 혼돈의 무도회 같았다. 인간이 되풀이하는 허무, 믿음과 의심 사이를 오가는 영혼의 방황. 그 불안과 혼란의 리듬이 우리 자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근원의 빛’, 영혼의 회복 네 번째 악장 Urlicht(근원의 빛)에서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의 목소리는 말러의 내면 그 자체였다. “나는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리라.” 그 한 문장은 고통을 통과한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진심이었다. 그녀의 음색은 고요했으나 뜨거웠고 마치 시간의 결이 녹아내리듯 관객의 마음을 감싸 안았다. 그 순간, 음악은 종교가 되었고, 눈물은 기도가 되었다. ‘ 부활 ‘ 인간의 찬가 마지막 악장 “Auferstehung”(부활)이 시작되자, 홀의 공기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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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 행복한 노래 청담동 아트갤러리 ‘미쉘’ 살롱콘서트 후기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삶이 어느덧 한 고비를 넘어가면서, 사람들은 다시 ‘자신만의 노래’를 찾게 된다. 은퇴 이후 노래를 배우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노래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노래는 삶의 리듬을 되찾는 호흡, 그리고 마음을 정화시키는 치유의 예술이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순간, 사람들은 다시 젊어지고 한때의 자신을 또렷하게 마주하게 된다. 11월 3일 17:00청담동의 작은 갤러리 ‘미쉘’에서 그 행복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공연의 시작은 가을을 여는 목소리로… 피아노·바이올린·오보에의 3중주가 감미롭게 공간을 감싸며 첫 무대가 열렸다. 소프라노 김숙영의 〈가을편지〉가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 위에 ‘가을 냄새가 스며든 목소리’처럼 흐르자, 관객들의 마음도 함께 열렸다. 이어 소프라노 김경자, 김미현, 김정임의 호소력 있는 무대가 이어졌고,…
(사)한국예술가곡총연합회 ‘공익법인 출범 기념 음악회 및 제1회 세미나’ 개최
‘한국가곡의 새 시대, K-가곡으로 세계를 향하다’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한국가곡의 새로운 비상을 알리는 뜻깊은 행사가 열린다.(사)한국예술가곡총연합회(이사장 신귀복)는 오는 10월 30일(목) 오후 2시, 서울 세종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연주홀에서 ‘K-가곡 세미나 및 공익법인 출범 기념 음악회’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한국가곡의 정체성과 세계화를 모색하며, 우리 가곡이 K-클래식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는 비전을 제시하는 자리다. ■ 1부 세미나 ― “한국예술가곡의 역사적 의미” 정희준 명예이사장(홍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주제 발표를 맡아, ‘한국예술가곡의 역사적 의미’를 중심으로 우리 가곡의 형성과정과 예술적 정체성을 고찰한다. 그는 홍난파의 「봉선화」로 대표되는 한국예술가곡의 근원과 미학적 가치를 조명하며, K-가곡의 문화 확장 가능성과 세계적 공감의 토대를 제시할 예정이다. ■ 2부 음악회 ― “우리 가곡의 진수, 예술성과 대중성의 만남” 피아니스트 장동인의 반주로소프라노 정원 이경숙, 민서현, 유열자, 임승환, 김선미, 이효숙, 강화자, 백현애,테너 이진우, 김명관, 이우식, 박동일,바리톤 이상은 등 국내 중견 성악가들이 출연해 한국가곡의 명곡과 창작가곡의 정수를 선보인다. 특별 순서로는 시인 서영순, 임보선의 자작시 낭송과 작곡가 정영택 부이사장의 피아노 연주 「즉흥환상곡(쇼팽)」이 더해져 문학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감동의 무대를 완성한다. ■ 공익법인 출범의 의미와 비전 총감독 정영택 부이사장은 “한국가곡은 이미 세계 무대에서 예술성과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번 세미나와 음악회가 K-클래식으로서 한국가곡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 (재)송촌·지학장학재단이 후원하며, 서울우리예술가곡협회, 한국가곡사랑연구회, 벨라보체, 사랑과 평화, 음악에 기대며 등 여러 단체가 공동 참여해 예술적 연대와 공익적 가치를 함께 높인다. ■ 세미나의 핵심 의의 이번 세미나는 단순한 음악 행사가 아니라,’한국가곡의 역사적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세계화를 위한 실질적 전략을 논의하는 포럼’으로서 의미가 깊다. 참석자들은 다음의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논의한다. • 음악의 기원과 노래의 본질 • 가곡의 정의와 시대적 변천 • 각 나라의 가곡 전통 비교 • 한국가곡의 선구자와 형성 과정 • 홍난파 이후 한국예술가곡의 전개 이를 토대로 ▲전통 선율의 현대적 해석 ▲우리말 가사의 예술적 보존 ▲해외 공연 플랫폼과의 협력 ▲창작가곡의 글로벌화 전략 등 K-가곡의 국제 경쟁력 강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 한국가곡 세계화를 위한 대안과 나아갈 길 한국가곡이 세계 속의 음악언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작곡가·시인·성악가의 융합창작 생태계 조성, -해외 문화원 및 국제 음악축제와의 교류 프로그램 강화, -AI 기반 K-가곡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을 통한 글로벌 접근성 확대가 필요하다. 또한 청년 성악가 육성 지원, 창작가곡 공모제 제도화, 세계가곡페스티벌 개최 등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 구조를 마련할 때, 한국가곡은 ‘한류의 품격 있는 예술축’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공연 후기 | La Speranza ― 미라클보이스앙상블 정기연주회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오늘은 미라클보이스앙상블팀이 아르텔필하모닉오케스트라, 그리고 지휘자 윤혁진님과 협연하는 무대이며, 우리 서울우리예술가곡팀 블리스앙상블이 함께한 롯데콘서트홀 연합합창의 날이었다. 오랜만에 9층 합창석에 서니 그 웅장함이 장관이었다. 위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온몸으로 받으며 내어보니 참 좋았다.한눈에 들어오는 오케스트라의 선율 또한 새로운 감동이었다.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합창하기 좋은 연주장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또 얼마나 다행인가. 2025년 10월 20일 저녁,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제6회 정기연주회 〈La Speranza〉는 이름 그대로 ‘희망’을 노래한 감동의 무대였다. 이번 무대는 발달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지닌 성악가들로 구성된 미라클보이스앙상블이 아르텔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한 특별한 협연으로, 약 120분 동안 관객에게 깊은 위로와 울림을 선사했다. ‘라 스페란자(La Speranza)’는 이탈리아어로 *‘희망’*을 뜻한다. 공연 제목처럼, 이들의 음악은 인간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삶의 용기와 회복을 일깨우는 메시지로 가득했다. 1부 〈기억의 뒤에서 피어나는 노래 ― 동심의 노래〉에서는 장애를 넘어 순수한 마음으로 노래하는 미라클보이스앙상블의 맑은 목소리가 롯데콘서트홀을 따뜻하게 채웠다. 이어진 2부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과거 저항과 꿈꾸는 시간〉에서는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비롯한 웅장한 합창곡들이 이어지며, 예술이 지닌 치유의 힘과 인간의 존엄을 노래했다. 이번 연주에는 서울예가 블리스&파파스 앙상블, 행경합창단, 리더스앙상블 등,여러 합창단이 함께해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합창석을 가득 메운 우리의 하모니는 말 그대로 ‘희망의 울림’이자 ‘기적의 하모니’였다. 3막에서는 테너 류정필이 〈Volare〉와 〈함께 가자〉를 노래하며 공연의 후반부를 뜨겁게 달구었다. 지휘자 윤혁진과 음악감독 김은정의 헌신과 열정이 빛난 이번 무대는 단순한 음악회가 아닌, “함께 노래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선언이었다. 2018년 창단된 미라클보이스앙상블은 그동안 사회적 편견을 넘어, 음악으로 세대와 세상을 잇는 기적의 여정을 이어왔다. 오늘의 무대는 그 여정이 얼마나 단단한 믿음과 사랑으로 지켜져 왔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필자 또한 연합합창단의 한 일원으로 그 무대에 섰다. 오히려 건강한 몸을 가진 우리가 더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미라클보이스앙상블의 노래는 놀라울 정도로 순수하고 합창 하모니 완성도가 높았다. 그동안에 미라클팀의 피나는 노력과 연습이 엿보인 무대였다 특히 객석에서 열정을 다한 김은정 음악감독과 윤혁진 지휘자의 세심한 지도력과 그리고 음악을 통한 사명감이 무대 위에서 찬연히 빛났다. 음악이 곧 희망이 되었던 밤,그들의 노래는 세상의 빛이 되어 울려 퍼졌다. 오늘의 미라클보이스앙상블의 성공적인 연주처럼, 음악을 통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의 꿈을 끊임없이 이어가기를 바란다. ▲사진= 서울예가블리스앙상블팀 ⓒ강남 소비자저널
[손영미 칼럼] ‘가을, 시를 노래하다, 강석우 그리고 가곡의 밤
‘가을, 시를 노래하다, 강석우 그리고 가곡의 밤’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2025년 10월 13일 (월) 저녁 18:50 용산 온누리교회 본당 가곡의 선율 속으로 저녁 마실을 나섰다. 오늘의 무대는 방송인 강석우 씨가 주최한 〈가곡의 밤〉으로 그가 소속된 온누리교회 본당에서 열린 이번 공연은, 배우로서의 익숙한 얼굴 뒤에 숨겨진 ‘가곡을 사랑하는 음악인’으로서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진 자리였다. 무대에는 소프라노 강혜정, 김순영, 바리톤 송기창, 이응광, 그리고 이웅 음악감독, 피아니스트 이소영, 클래식기타리스트 이미솔, 앙상블 Sonare가 함께했다. 작지만 단단한 구성의 팀이 만들어낸 울림은 깊고 순수했다. 공연은 세 개의 테마로 엮여, 마지막 무대에서는 자신의 곡들을 선보였다. 12개 선정 곡들을 각 성악가가 네 곡씩 번갈아 부르며 인터미션 없이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지만, 지루함보다는 몰입의 밀도가 점점 깊어졌다. 또한 강석우 씨의 짧고 담백한 해설과 시 낭송, 그리고 색소폰 연주가 곁들여지며, 가곡이 단순한 노래를 넘어 ‘시와 선율을 통해 우리 말과 감정의 예술’임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마지막 앙코르곡 강석우 작사 ,작곡 〈내 마음은 왈츠〉 까지, 가을비를 마중하는 듯한 따뜻한 마무리는 잘 익은 동치미 국물처럼 시원한 여운을 남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음악이 좋아, 노래가 좋아”라는 마음이 모인 관객들의 진정성은 그 어떤 화려한 공연보다 따뜻한 선물로 안겼다. 때론 우리 가곡을 오늘 처음 접한 관객들도 많았다. 오늘도 가곡을 지키고, 전하며, 이윤 없이 대가 없이 가곡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하나 된 만남은 그래서 더욱 귀했다. 우리 가곡을 더 많은 이들에게 우리 지역사회로, 더 가깝게 전파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 선곡과 프로그램 해설 〈Mattinata〉 아침의 노래 (R. Leoncavallo) 소프라노 강혜정 이탈리아 벨칸토의 화려함 속에서도 아침의 투명한 공기를 그려낸 곡으로 강혜정은 맑은 햇살처럼 첫 무대를 열며, ‘삶의 시작’과 ‘사랑의 설렘’을 동시에 노래했다. 〈Non ti scordar di me〉 물망초 (E. de Curtis)소프라노 김순영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제목처럼, 그리움과 사랑의 지속성을 담은 곡으로 김순영의 따뜻한 음색은 이별의 아픔을 품은 채, 사랑의 기억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Parla più piano〉 대부 (N. Rota) 바리톤 송기창 영화 〈대부〉의 주제곡으로 유명한 이 곡에서 송기창은 감정의 절제를 통해 깊은 인간애를 표현했다. 그의 중후한 바리톤은 사랑과 권력, 회한이 교차하는 영화적 장면을 극적으로 되살렸다. 〈Erlkönig〉 마왕 (F. Schubert) 바리톤 이응광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독일 가곡의 정점. 이응광은 부성애의 절규, 공포, 죽음의 유혹을 한 곡 안에서 폭발적인 드라마로 완성했다. 피아노와 목소리가 하나 되어 그로테스크한 긴장을 극대화했다. 〈코스모스를 노래함〉 (이기순 시,이흥렬 곡) 을 연주한 강혜정은 가을 들판의 순결한 꽃, 코스모스를 노래하며 인간의 신앙과 사랑을 상징한다. 그의 음성은 맑고 따뜻한 믿음의 결을 그려냈다. 〈진달래꽃〉 (김소월 시,김선경 곡) 김순영 떠나는 이를 향한 슬픔과 체념의 미학이 깃든 명가곡. 김순영의 절제된 감정과 서정적 호흡이 시의 정서를 품격 있게 살렸다. ‘광야’를 빚듯 내면의 결을 낱낱이 빚은 듯, 고운 선율을 뽑아낸 작곡가 김선경의 재능이 돋보였다. 〈청산에 살리라〉 (김연준 곡) 송기창 자연 속 자유와 인간 존재의 평화를 노래한 곡.…
[손영미 칼럼] ‘예술과 기초과학의 융합, 창조의 원천을 다시 묻다
– “예술은 인간 내면의 확장이며, 감성 혁신의 원천이다.” –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최근 일본이 또 한 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만 20명이 넘는 수상자를 낸 일본은 ‘기초과학의 나라’로 불린다. 그 배경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연구’라도 꾸준히 지원하는 문화가 있다. 일본의 과학자들은 종종 말한다. “우리의 목표는 기술이 아니라, 세상의 원리를 알고 싶은 마음이다.” 이 단순하고 순수한 호기심이야말로 기초과학의 본질이며, 예술가의 창조 본능과 다르지 않다. 기초과학은 특정 목적이나 경제적 이익보다 자연 현상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물리학·화학·수학·천문학 등은 응용과학의 밑바탕이자 인류 지성의 뿌리다. 겉보기에 ‘쓸모없음’처럼 보이는 그 연구들이 결국 미래의 혁신을 이끈다. 교토대 요시노 아키라 교수의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가 그 예다. 처음엔 실용성이 없다며 외면받았지만, 지금은 모든 전자기기의 핵심이 되었다. 예술이 감정의 구조를 탐구한다면, 과학은 자연의 구조를 탐구한다. 피카소의 형태 실험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모두 기존의 틀을 깨고 ‘보이지 않는 질서’를 보려는 시도였다. 예술의 상상력이 과학의 혁신을 낳고, 과학의 질서감이 예술의 깊이를 만든다. 일본의 교육현장에는 이런 융합적 사고가 스며 있다. 미술 시간에 ‘빛의 굴절’을 그려보고, 과학연구소에서는 미술 전공 학생들이 ‘감성 데이터 시각화’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예술과 과학이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기초’라는 뿌리가 깊어진다. 반면 우리는 응용과 효율을 앞세운 나머지, 기초의 토양을 메말라가게 했다. 그러나 기초과학은 단지 국가경쟁력의 기반이 아니라 문화의 품격을 결정짓는 힘이다. 인공지능이 사고를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인간의 사유가…
[손영미 칼럼] 한국가곡의 울림, 세계의 언어로 피어나다
‘한국가곡 국제콩쿠르 수상자 음악회’ K-가곡 슈퍼스타 본선 진출자들의 화려한 무대로 세계 각국 성악가들과 함께 KBS·두남재·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하나 되어, 한국가곡의 위상을 새롭게 각인시키다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2025년 10월 4일 저녁 7시, 추석 연휴가 시작된 첫 주말밤 롯데콘서트홀은 뜨거웠다. ‘한국가곡 국제콩쿠르 수상자 음악회’는 단순한 성악 무대가 아니었다. 세계 각국의 성악가들이 한국의 언어와 정서를 몸과 마음에 새기며, ‘가곡’이라는 예술을 새롭게 정의한 순간이었다. 그들은 한 곡의 노래를 위해 시를 외우고, 작곡가의 생애를 탐구하며, 한국 친구를 사귀고,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했다고 한다. 이들은 봄부터 한국어를 익히고, 정서적 교류와 편곡·레슨을 거듭하며 준비한 그들의 무대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감정의 언어’로 피어났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세계 각국 성악가들이 각자의 개성으로 풀어낸 한국가곡의 다채로움이었다. 같은 〈보리밭〉이라도 음색과 호흡, 감정의 결이 달랐고, 그 차이가 오히려 노래의 깊이를 더했다. 또한 본선 무대에 오른 성악가들답게 음악적 완성도와 표현력은 탁월했다. 발성, 음색, 디테일 어느 하나 소홀함이 없었으며, 한국어의 억양과 숨결까지 섬세하게 살려냈다. 〈청산에 살리라〉, 〈고향의 노래〉, 〈박연폭포〉, 〈그리운 금강산〉, 〈금잔디〉, 〈어느 봄날〉, 〈아리아리랑〉 등 익숙한 곡들이 다국적 감성으로 재해석되어 낯설지만 더욱 깊은 울림을 전했다.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반주와 최영선 지휘자의 섬세한 리딩은 그 감동의 결을 완성했다.…
[손영미 칼럼] 오페라 비제의 아리아 〈Je crois entendre encore〉조르주 비제(Georges Bizet)의 “기억의 선율, 진주조개잡이와 사랑의 잔향”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19세기 중엽, 파리 오페라 무대는 늘 새로운 감각을 갈망하고 있었다. 낭만주의의 정열과 동양에 대한 호기심이 교차하던 시대, 젊은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는 스물다섯의 나이로 오페라 진주조개잡이(Les Pêcheurs de Perles, 1863)를 선보인다. 인도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우정과 사랑, 그리고 신성한 맹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초연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낭만적 오리엔탈리즘’의 대표작으로 재평가되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테너 아리아 〈Je crois entendre encore〉(“나는 아직도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는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곡으로 꼽힌다. 영국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리아’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한 이 곡은, 주인공 나디르가 옛사랑 레일라를 회상하며 부르는 노래다. 단순한 서정을 넘어선 깊은 울림을 지니며, 맹세와 욕망, 신성한 의무와 인간적 갈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그의 내면을 고요히 드러낸다. 음악적 특징 이 아리아는 피아니시모(pianissimo, 아주 여린 소리)로 흐르는 듯한 선율이 특징이다. 테너의 고음역을 사용하면서도 부드럽고 감미로운 호흡이 요구되며, 고음 B와 C를 벨칸토 기법으로 자연스럽게 떠올리듯 표현해야 한다. 마치 안개 속 기억처럼 아련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고난도 아리아다. 가사와 의미 Je crois entendre encore Caché sous les palmiers, Sa voix tendre et sonore Comme un chant de ramiers. “나는 아직도 듣는 듯하다. 야자수 아래 숨어 울려 퍼지던 그녀의 목소리, 부드럽고 울림 있는 그 음성, 마치 산비둘기의 노래처럼…” 이처럼 노래는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잔향을 담고 있다. 현실에서는 떨어져 있지만, 주인공의 내면에는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와 눈빛이 선명히 살아 있다. 비제의 젊은 서정성 아리아는 테너의 섬세한 호흡, 끝없는 레가토, 맑고 고운 고음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젊은 비제가 이미 보여준 시적인 선율 감각이 짙게 드러난다. 작품 전체 맥락에서 이 아리아는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운명의 복선을 암시하며, 이후 펼쳐질 사랑과 희생의 비극을 예고한다. 바다처럼 돌아오는 기억 〈진주조개잡이>는 “이국적 배경 위에 펼쳐진 사랑과 희생의 드라마”이고, 그 중심에 선 〈Je crois entendre encore〉는 테너들이 도전하는 가장 서정적이고 난해한 아리아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곡의 매혹은 단순히 선율의 아름다움에 있지 않다. 한 올 한 올 이어가는 긴 호흡, 절제된 고음의 투명한 울림은 인간 내면의 미묘한 흔들림을 투사한다. 음 하나하나가 파도에 실린 기억처럼 떠올랐다 사라지고, 다시 다가왔다 멀어진다. 바다는 결코 과거를 완전히 지우지 않는다. 잃어버린 목소리를 끊임없이 속삭이며 되살려낸다. 무엇보다 이 아리아를 들을 때, 우리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인간 존재가 품은 근원적 갈망을 마주하게 된다. 그 갈망은 시간 속에서 희미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침묵 속에서 선명해진다. 마치 “사랑의 기억은 파도처럼 반복된다”라는 하나의 철학적 진술처럼, 음악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회귀의 운명을 일깨운다. 비제의 진주조개잡이는 당대 오리엔탈리즘적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오늘 우리가 듣는 이 아리아는 그 시대를 넘어선다. 그것은 바다와도 같은 음악의 힘이다. 기억과 갈망, 우정과 사랑을 초월적으로 아우르는 울림 그 이상이댜.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파도의 이름으로 돌아올 뿐이다.” ▲영상 로베르토 알라냐가 미셸 플라송의 지휘로 비제 오페라 〈진주조개잡이〉 1막 로망스 〈Je crois entendre encore〉를 노래합니다. 이 영상은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된 DVD 라이브 〈베르사유에서 만나는 프랑스 오페라 100년〉중 한 장면으로, 2009년 베르사유 궁전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특별한 무대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손영미 칼럼] 류근의 시 ‘ 어떻게든 이별’존재가 불행을 통과하는 방식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사랑은 인간에게 가장 오래된 질문이자, 가장 단호한 응답이다. 류근의 시 〈어떻게든 이별>은 이 질문과 응답이 불행과 행복이라는 역설적 틀 속에서 어떻게 충돌하고, 또 어떻게 화해하는가를 보여준다. 당신을 만나서 불행했습니다. 남김없이 불행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이 불행한 세상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랑이 있어서 행복했고 사랑하는 사람 당신이어서 불행했습니다. 우린 서로 비껴가는 별이어야 했지만, 저녁 물빛에 흔들린 시간이 너무 깊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서로를 붙잡을 수 밖에 없는 단 한 개의 손이 우리의 것이었습니다. 꽃이 피었고 할말을 마치기에 그 하루는 나빴습니다. 결별의 말을 남길 수 있어 행복합니다. 당신을 만나서 참으로 남김없이 불행했습니다 첫 구절, “당신을 만나서 불행했습니다. 남김없이 불행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이 역설은 인간 존재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찌른다. 우리는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구원을 꿈꾸지만, 동시에 그 만남은 필연적으로 상처와 이별을 내포한다. 하이데거가 말했듯이, 인간은 세계 내 존재로서 타인과 얽히며, 그 얽힘은 불안과 가능성을 동시에 낳는다. 류근의 화자는 바로 이 불안을 “남김없이 불행한 행복”이라는 언어로 길어 올린다. 시 속에서 “비껴가는 별”은 원래 만나지 않아야 했던 운명을 상징한다. 그러나 “저녁 물빛”이라는 찰나적 아름다움이 그 운명을 흔들고, 두 존재를 얽히게 만든다. 이 장면은 사랑의 본질을 드러낸다. 사랑은 필연이 아니라 사건(event)이다. 들뢰즈의 말처럼 사건은 우연히 발생하지만, 한 번 발생하면 모든 것을 바꿔버린다. 그 우연이 “어쩔 수 없었던” 필연으로 변모하는 순간, 사랑은 이미 존재의 뼈 속에 새겨진다. 그런데 이 사랑은 손이라는 이미지로 응축된다. “서로를 붙잡을 수밖에 없는 단 한 개의 손이 우리의 것이었습니다.” 존재론적으로 손은 세계와의 접촉이며, 타인과의 첫 매개다. 우리가 세계를 붙잡고, 서로를 확인하는 방식은 손을 통해 이루어진다. 결국 이 사랑은 다른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는 단일한 손의 선택이었고, 그것이 곧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바로 그 손을 내밀 때에만 진정한 존재로 선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결별의 순간을 이렇게 말한다. “결별의 말을 남길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이별은 부정이 아니라, 사랑이 남긴 마지막 형식이다. 꽃이 피는 순간 이미 시들음을 내포하듯, 사랑은 그 결말 속에서 완성된다. 카뮈가 “삶은 부조리하지만 그 부조리를 끌어안는 순간, 삶은 존엄해진다”고 말했듯, 이 시에서의 이별 또한 인간적 존엄의 언어다. 결국 류근의 <어떻게든 이별>은 한 개인의 연애담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사건을 통해 인간이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불행을 통해 어떻게 존재를 완성하는가에 대한 사유다. 우리는 불행 속에서조차 충만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은 언제나 남김없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남김없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끝에서야 비로소 그 전모를 드러낸다. 이별은 그 완성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 니체 ▲사진=저녁이 물든 동네에서 ⓒ강남 소비자저널 ▲사진=훗가이도…
[손영미 칼럼] 내 심장을 뛰게 하는 단 하나의 노래
“헨델의 Ombra mai fu”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사람마다 가슴속에 품은 노래가 있다. 수많은 멜로디가 계절처럼 흘러가지만, 내 영혼을 단번에 흔들고 무너진 마음의 문을 열어젖히며, 다시 살아가게 하는 노래는 단 하나뿐이다. 나에게 그 노래는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 속 아리아, 〈Ombra mai fu>이다. 흔히 ‘라르고’라 불리는 이 곡은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지 않는다. 단지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을 찬미하는 단순한 노래일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 단순함 속에 놀라운 평화가 깃들어 있다. 세상의 소란이 잠시 가라앉고, 바람결 같은 선율이 내 마음에 머무른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고요를 듣는 듯했다. 오래된 상처에 따뜻한 손길이 얹히는 순간처럼, 현악기의 숨결은 눈물의 길을 따라 흘렀고 목소리는 내게 속삭였다. “너는 아직 살아 있다. 네 심장은 여전히 뛴다.” 이 노래는 기쁨의 날엔 환희를 더 크게 울려주고, 슬픔의 밤엔 울음을 대신 흘려주었다. 때로는 기도의 목소리로, 때로는 내 삶의 일기장 한 장으로 다가왔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만약 이 곡이 내 삶에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더 쉽게 지치고 얼마나 더 일찍 포기했을까. 그러나 이 노래 덕분에 나는 다시 일어나고, 다시 길을 걷는다. 〈Ombra mai fu〉는 나에게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을 붙드는 그늘이자, 언제든 안길 수 있는 품이다. “음악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을 전하고, 침묵으로는 감히 담을 수 없는 것을 드러낸다.” – 빅토르 위고 9월의 문턱, 가을의 정원 속에서 나는 헨델의 〈Ombra mai fu〉를 들으며, 내 영혼이 가장 평온한 세상을 안으며 그것이 단순한 음악적 경험을 넘어 내 삶의 리듬과 호흡을 조율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느낀다. 손영미 2025, 9월 가을의 문턱에서 ~ https://www.youtube.com/watch?v=EAP7j3B_yIY ▲Handel: Ombra mai fu (Serse); Christopher Lowrey, countertenor, Voices o https://www.youtube.com/watch?v=DILRy0Va4zE ▲소프라노 루치아 포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