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公定)과 정의(定義) 를 화두로 내놓은 새 정부가 인수위 구성 등으로 매우 분주하다. 법과 원칙이 무너진 곳에선 늘 깃발이나 주먹의 힘이 세었기 때문이다. 부조리의 독버섯도 그런 땅에서 기생 환경이 만들어진다. 원칙이 무시된 세상은 그래서 늘 싸움판이다.
배려나 존중, 이성의 논리가 박약한 곳에서 왜곡된 힘은 강해질수 밖에 없다. 공정하지 않은 불공정은 왜곡된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합리적인가? 품격의 문화층은 또 얼마나 되나? 오케스트라에서 자기 악기만 세게 불려고 한다면 지휘자가 열 받고 관객은 퇴장할 것이다. 삼류 오케스트라일 수록 특징이 지휘자를 안 본다는 것이다. 거꾸로 엉터리 지휘자는 단원을 긴장시킨다. 어떤 경우든 국민 관객은 불안하다.
나쁜 습관을 고치는 치료제가 문화 예술이다. 아름다운 화음, 실내악의 균형, 미술의 안목, 합창의 화합, 은연중에 스며드는 것들을 풍성하게 잠재시키는 힘이 많을 수록 사실상의 부강한 나라다.
거친 것은 순수를 보지 못해서 그렇다. 땅, 제물에 눈이 뒤집히는 것은 영원과 순간을 구별 못한 집착 때문이다. 국민 육아 멘토 오은영 박사를 보면 성년이 되어 문제의 대부분은 어렸을 적의 애정, 사랑 결핍이 비뚫어지는 원인이란 것을 안다. 입장 바꿔 생각하는 훈련, 경청의 덕목이 있을 때 사회는 숙성으로 간다. 그러니까 새 정부에서는 억지를 부리는 정치에서 벗어나, 힘과 주먹의 시대를 벗어나, 포용으로 통합의 새 정부가 구현되기를 바란다.
독단적인 판단만 있고 흐름을 보지 못하면 고립된다. 각자의 개인부터 자기 점검을 생활하면 어떨까? 코로나 진단처럼 셀프 키드로 오늘 얼마나 배려와 존중을 잃지 않았나? 테스트 말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도 욕심이 발화시킨 인류의 대재앙이다. 모두 피해자임으로 승자란 없다. 그렇지만 싸움에는 룰이 있다. 어른과 아이가 싸우면 어른이 지고, 여자와 남자가 싸우면 남자가 진다. 선배와 후배가 싸운다면 부부싸움처럼 말리기도 쉽지 않다. 어떤 경우든 싸움은 욕심이나 힘의 과신에서 생기는 것 같다. 살다보면 세상에선 지면서 이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 선거도 끝났고 후유증 걱정이 태산이다.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으니 주먹 싸움을 끝내고, 한걸음씩이라도 새로운 세상을 응시했으면 한다. 어쩻든 주먹의 힘보다 더 강한 것이 문화의 힘이라고 하신 김구 선생의 말씀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탁계석
한국예술비평가회장
문화저널21 객원 논설위원
K클래식 회장
한국경제문화연구원 한류문화예술위원장
칸타타 송 오브 아리랑, 동방의 빛, 코리아 판타지
훈민정음 대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