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문정 | 대중문화평론가]
손영미 시인의 시 세계는 한 장르로 규정되기를 거부한다. 그의 문장은 음악의 호흡을 닮았고, 무대의 동선처럼 움직이며, 인물의 심리를 따라 서사적으로 진동한다.
극작가·시인·칼럼니스트라는 복합적 이력, 그리고 성악적 감각과 철학적 사유가 결합된 그의 시적 태도는 신작 시집 『자클린의 눈물』을 한국 현대시에서 드문 ‘음악적 존재론의 텍스트’로 끌어올린다.
이 시집에서 슬픔은 감정의 결과가 아니다. 슬픔은 언어가 태어나는 조건이며, 시는 고통을 설명하기보다 고통이 말을 얻는 순간을 기록한다. 손영미에게 슬픔은 정서가 아니라 작동하는 힘이다. 언어는 슬픔을 통과할 때 비로소 생겨나고, 그 순간 존재는 자신의 형태를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그의 시학은 전통 서정시와 거리를 두며, 쇼펜하우어적 비관주의와 릴케의 존재 불안, 그리고 한국 여성서사의 상흔과 맞닿는다.
그의 시가 지닌 또 하나의 핵심은 음악적 형식성이다. 손영미의 시에서 음악은 비유가 아니라 구조다. 여백은 쉼표처럼 작동하고, 문장은 피아노의 반복구처럼 되돌아오며, 감정은 아리아의 상승부처럼 고조된다.
표제시 「자클린의 눈물」에서 첼로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화자에 가깝다. 몸은 악기가 되고, 눈물은 음향의 파동이 되어 존재 전체를 진동시킨다. 이는 음악의 구조를 문학의 구조로 번역하려는 드문 시적 실험이다.
최근작 「2021년, 고려장」은 그의 시학이 가장 날것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요양원 창밖의 자줏빛 노을,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선, 돌아서는 순간 겹쳐지는 까마귀 떼의 이미지. 이 시에서 슬픔은 개인적 죄책감에 머물지 않는다. 돌봄과 이별이 제도와 공간 속에서 어떻게 구조화되는지를 차분히 드러낸다.
시인은 비극을 고발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가 갇히는 순간, 고통이 언어를 생성하는 찰나를 정확히 포착한다. 슬픔은 사건이 아니라 구조이며, 그 구조가 시를 낳는다.
한편 「편」이라는 시에서 손영미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독자의 마음에 접근한다. 어머니의 유품 속 수첩에 적힌 한 문장, “언제나 난 네 편이다.” 이 짧은 말은 방향이 되고 기준이 되며, 끝내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증거가 된다. ‘편’이라는 단어 하나가 기억과 관계, 정체성의 중심축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팬데믹의 불안, 버려짐의 공포, 고아가 된 이후의 세계 속에서 이 단어는 우주처럼 작동한다. 가장 작은 언어가 가장 큰 세계를 지탱한다.
또한 ‘사랑을 위한 비유법 ‘
손영미의 시에서도 몸은 가장 오래된 기록자다. 상처와 숨, 목소리의 떨림은 기억의 저장소이며, 세계를 해석하는 감각기관이다. 그의 사물들 또한 감정을 장식하지 않는다.
김치찌개, 폐건물, 정전된 엘리베이터 같은 일상의 사물들은 감정을 해부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차갑게 보이는 기호들 위에는 언제나 몸의 체온과 상흔이 남아 있다.
『자클린의 눈물』은 슬픔을 미화하지 않는다. 절망의 표식으로도 남겨두지 않는다. 대신 슬픔을 통과해 언어가 다시 태어나는 자리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 시집은 한 존재가 고통을 건너며 남긴 기록이자, 음악과 언어, 신체와 기억, 존재와 관계를 하나의 리듬으로 엮어낸 성취다.
손영미의 시는 말한다.
슬픔은 끝이 아니라, 언어가 다시 시작되는 자리라고…
▲사진=손영미 시집 『자클린의 눈물 』표지 ⓒ강남 소비자저널
▲사진=손영미 시집 『자클린의 눈물 』소개(알라딘, 교보문고, 예스24) ⓒ강남 소비자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