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김은정 대표기자]한국온라인수출입연합회(대표 조동휘)와 한국멀티미디어방송총연합회(대표 윤여재)는 지난 9일(목) 오후 3시 상호 발전을 위해 협약을 체결했다. ▲사진=협약서 ⓒ강남 소비자저널 ※헤드라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소비자평가/인물정보/통계/web3 유동성 풀 순위발표
[강남 소비자저널=김은정 대표기자]한국온라인수출입연합회(대표 조동휘)와 한국멀티미디어방송총연합회(대표 윤여재)는 지난 9일(목) 오후 3시 상호 발전을 위해 협약을 체결했다. ▲사진=협약서 ⓒ강남 소비자저널 ※헤드라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강남 소비자저널=김은정 대표기자] (고용노동부사단법인)한국직업기술교류원(회장 김승용)과 한국멀티미디어방송총연합회(대표 윤여재)는 지난 9일(목)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상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협약서에 서명했다. ▲사진=협약서 ⓒ강남 소비자저널 ※헤드라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강남 소비자저널=김은정 대표기자] 대한민국육군학사장교 13기 서울동기회(회장 조문형)는 지난 17일(금) 오후 7시 서울시 강남구 소재 진땡이 식당에서 2025년 제1회 신년모임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날 학사13기총동기회 백주인 회장을 비롯 다수의 임원단이 참석했으며, 전임 김태영 총동기회 회장, 2훈육대 차재진 회장 등 많은 동기들이…
▲사진=정봉수 노무사, 강남노무법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봉수 칼럼니스트] 2011년 7월 1일부터 복수노조가 전면 시행되었는데, 조합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다수 노조가 교섭대표로서 권한을 가지는 것과 함께 공정대표의무를 부과하여 소수 노조에게도 일정 부분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복수노조 제도에서는 노사관계에 크고 작은 긍정적…
12월 17일 푸르지오 아트홀 [강남 소비자저널=편집부] 생명력 넘치는 작품으로 탄생 음악 미의 시간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현대 음악은 공간성과 함께 가장 논리와 이기적인 환상이 조화를 이루는 미학이다. 그리고 그 시간성과 공간성은 이성과 논리가 합리적으로 구성된다. 지난 12월 17일 을지로 4가에 있는 푸르지오 아트홀에서는 탁현욱 작곡 발표회가…
[강남 소비자저널=정현아 기자] 홍천군사회복지협의회 제9대 오주희 회장의 취임식과 신년 인사회가 1월 17일 홍천 K컨벤션웨딩홀에서 성대히 열렸다. 이번 행사에는 신영재 홍천군수, 박영록 군의장, 박주선 홍천문화원장, 오인철 민주평통 홍천군협의회장, 신은섭 홍천군체육회장을 비롯한 지역 주요 인사와 주민 등 250여 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맞춤 복지로 복지 사각지대 해소” 오주희 회장은 취임사에서 “고령화가 빠르게…
– 한용운과 이당 김은호 [강남 소비자저널= 하정언 칼럼니스트] 이당 김은호는 3.1 운동 33인과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뤘다. 마지막 어진 화사로서 고종과 함께 한 시간이 가장 많았던 이당은 이미 어진화사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고문과 취조가 더욱 심했다. ▲사진=판결문 ⓒ강남 소비자저널 1919년…
[강남 소비자저널=김은정 대표기자] 이당 김은호선생은 1910년 한일병합으로 모든 권력과 왕실의 모든 재산까지 빼앗긴 고종 황제에 의해 1912년 어진화사로 발탁되었다. 다섯 분의 어진을 혼자 그릴 수 있느냐하여 모두 혼자 그렸다. 독립군 지원과 만주로의 이주를 위한 내탕금이 필요했다. 어진 화사로서 그림 값은 상당했으며, 고종 황제의 특별한 보살핌 아래서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강남 소비자저널=김은정 대표기자] 이당 김은호선생은 1910년 한일병합으로 모든 권력과 왕실의 모든 재산까지 빼앗긴 고종 황제에 의해 1912년 어진화사로 발탁되었다. 다섯 분의 어진을 혼자 그릴 수 있느냐하여 모두 혼자 그렸다. 독립군 지원과 만주로의 이주를 위한 내탕금이 필요했다. 어진 화사로서 그림 값은 상당했으며, 고종 황제의 특별한 보살핌 아래서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 이당 김은호의 고향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 [강남 소비자저널=하정언 칼럼니스트] 1892년 인천 문학산 밑 향교리 현에서 부농인 상산 김씨 2대 독자로 출생하였다. 예로부터 백학이 많이 날아오는 문학산이 선산이었으며 . 향교에서 할아버지 때부터 훈장을 하시며 학문과 예절을 배운다. 조부는 김용의, 부친은 김기일, 모친은 의성 김씨이다. 어린 시절 글방에서 한문을 배우며 성장하였는데 이때부터 신당 (神堂)의 탱화를 모사하는 등 그림에 상당한 재주를 보였지만 글을 중시하는 집안에서 화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여 자연스레 신학문의 관심을 두게 되었다. 1906년 개화기에 들면서 인천에 새로 생긴 인천 관립 일어학교에 입학하게 되며 그 후 사립 인천 인흥 학교 측량과에 입학을 한다. 당시 모두 인천에 새로 생긴 학교였다. 2년의 단기 과정을 마치고 이듬해에 부친이 사망을 하여 갑자기 집안이 몰락하는 일들이 기게 된다. 이로 인해 어린 이당이 가족을 책임져 야하는 가장이 되었다. 그 떄 부터 시작된 배고픔과 어려운 시절은 서울에 상경하여 궁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된다. ▲사진= 이당 17세 인흥학교 측량과 졸업증서 ⓒ강남 소비자저널 ▲사진= 당시 학우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