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스페인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은 산부인과 의사의 손에서 시작해 장의사의 손에서 끝나는 길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세상에 나온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손에 의해 세상을 떠난다.
그 사이의 시간만이 우리가 직접 걸어야 할 길이다.
그 길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리고 생각보다 거창하지도 않다.
인생의 대부분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차 한 잔을 마시고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저녁이 되면 하루를 접는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씩
자신의 생을 조금씩 사용한다.
하지만 그 길이 언제나 환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살면서 몇 번쯤
자신의 삶이 설명되지 않는 구간을 지나게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시간,
아무리 애써도 풀리지 않는 매듭,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독.
그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삶이란 축복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나태주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비참함 가운데 명랑한 것이다.”
이 문장은 삶의 모순을 말하는 동시에
삶을 견디는 태도를 말해 준다.
명랑함은 조건이 좋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태도다.
비참이라는 캔버스 위에
명랑의 색채를 덧칠하는 일.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품위 있는 창작인지도 모른다.
예술가에게 삶은 곧 재료다.
스페인 속담처럼 산부인과 의사의 손에서 시작해
장의사의 손에서 끝나는 이 유한한 여정은
사실 거대한 하나의 미완성 캔버스와 같다.
창작의 고통은 삶의 비참함과 닮아 있다.
아무리 애써도 풀리지 않는 서사,
의도와 다르게 번져버린 물감,
그리고 골방의 지독한 고독.
하지만 나태주 시인이 말한
“비참함 가운데 명랑함”은
예술가가 갖춰야 할 최고의 미학적 태도다.
명랑함은 결함 없는 완벽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삶의 균열을 인정하고
그 틈새로 새어 나오는 빛을 발견할 때
비로소 태어난다.
꽃을 보라.
꽃은 영원을 약속받고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곧 지게 될 운명을 알면서도
한 계절을 환하게 쓰기 위해 피어난다.
그래서 꽃은
자신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저 피어 있을 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완벽한 삶을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기 위해 태어났다.
누군가는
높은 자리에서 이름을 남기고
누군가는
조용한 자리에서 향기를 남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높이보다 오래 남는 것은
대개 향기다.
세상은 당신이 오른 높이를 기록하겠지만
역사는 당신이 남긴 향기를 기억한다.
그러니 삶을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하나의 작품처럼 살아도 좋겠다.
비참이라는 캔버스 위에
명랑이라는 색을 덧칠하며.
어차피 우리의 여정은
산부인과 의사의 손에서 시작해
장의사의 손에서 끝나는 짧은 길이니까.
그리고 삶에 대해
내가 믿는 한 문장이 있다.
“인생은 길이가 아니라,
어떤 빛깔의 태도로 시간을 채색했는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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