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계석 칼럼] 여순 사건을 보는 또 하나의 시선

여순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강남구 소비자저널=탁계석 칼럼니스트/평론가]
▲사진=탁계석 케이클래식 & 예술비평가회장 ⓒ강남구 소비자저널
▲사진= 상념에 잡힌  ‘ 바다에 핀 동백꽃 ‘ 의 작곡가 박영란 교수 ⓒ강남구 소비자저널

무관심이 쌓여 망각이 되고 기억 상실이 참화를 부른다

여순 사건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동사, 즉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고, 미래여야 한다. 지난 케케묵은 역사가 아니라, 뒤져봐야 알 수 있는 문헌이 아니라, 오늘의 생활에서, 삶에서, 살아 움직이고 호흡해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오페라다. 예술이란 그릇에 담는 것이다. 여순이 특정 분야 연구자들의 몫이 아니라면, 대중들이 쉽게 접근해야 한다면, 소통 문법인 공연장 무대에 올라야 한다.

여순이 그토록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협조하지 않는다. 관심조차 없다. 왜 그럴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오래 지난 과거이고, 잊기도 했고, 잘 모르기도 한다. 살기 바빠서 과거를 불러낼 여유조차 없다. 신세대에겐 전설 같을지 모른다. 그래도 관심을 끌어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아픔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기억을 소환해야 한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고 모두가 망각하면 미래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해야 한다. 그래서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하는 것이다.

▲사진=형제묘 앞의 추념비 ⓒ강남구 소비자저널

역사책이나 문헌, 추모식으론 한계가 있어

글로? 책으로? 여기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극장에서 오페라 아리아가 울려 퍼지고, 작품이 곳곳에서 공연이 된다면 오늘이 된다. 오페라 ‘토스카’도 오스트리아의 압제 하에 있던 이탈리아의 처참한 상황이고,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나오는 ‘나부코’ 역시 역사 스토리다. 많은 오페라는 지금도 살아 있어 한 때 국왕의 명성 보다 더 유명하다. 그래서 오페라는 세계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소통의 수단이다.

관객들은 공연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그래서 정치가나 유족만 관심이 있는 기념식이 아니라 감동의 형태를 만들어 공유해야 한다. 인류가 발명한 이 멋진 시스템에 탑재를 해서 세계가 기억하고 그 슬픔도 나누고, 치유하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다.

예술이란 틀을, 예술이라는 동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예술을 존중하고 가까이하는 이유다. 근자에 여순 사건을 비롯해 제주 4. 3, 광주 5,18을 기념한 오페라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만큼 시대가 달라졌음을 반영한다.

오늘의 여수 밤바다가 있기 까지, 영령들의 희생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엄청난 비극을 깡그리 잊고 또 반복할 것인가. 손가락 총을 내일의 유산으로 물려줄 것인가. 여순 오페라를 보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겠지만 생명 존중, 타인에 대한 배려, 공동체를 살아가는 오늘의 지혜를 오페라에서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극장의 존재이유고 관람하는 시민이 역사의 주역이 된다.

여수를 살면서도 여순을 모른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그 아픔을 딛고 오늘의 여수 밤바다가 있고, 관광 제1의 도시가 되었다면, 그 희생과 피의 값진 교훈을 알고 또 알려야 한다. 인류의 역사가 전쟁으로 점철되었기에 여순 오페라는 세계 여러 극장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오페라 대본을 쓰면서 ‘바다에 핀 동백꽃’의 슬픔을 극복하고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그려본다.

▲사진=프랑스 방송 취재단이 형제묘를 찾았다 ⓒ강남구 소비자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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