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유경율모이] (추모에세이) 작곡가 백병동을 기억하며

[노유경율모이] (추모에세이) 작곡가 백병동을 기억하며

― 소리와 시간, 그리고 한 작곡가의 자리   ▲사진=노유경 음악학박사, 공연평론가, 한국홍보전문가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노유경 칼럼니스트] 2026년 3월 12일, 작곡가 백병동이 향년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 현대음악의 형성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한 세대의 작곡가가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36년 만주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한 뒤 독일 하노버 국립음악대학(현 하노버 음악·연극·미디어 대학, Hochschule für Musik, Theater und Medien Hannover)에서 수학했고, 그곳에서 윤이상과 알프레트 쾨르펜(Alfred Koerppen) 등에게 작곡과 음악이론을 배웠다. 귀국 후에는 서울대학교 작곡과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하며 한국 작곡계의 교육과 창작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한국에서 현대 작곡기법이 제도적 교육 속에자리 잡아가던 시기에 그는 작곡가이자 교육자로서 그 흐름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이었다. 한국 현대음악의 학계와 작곡계에서 백병동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이름에 속한다. 일반 대중에게는 낯설 수 있어도, 한국 작곡계와 현대음악의 장 안에서는 오래전부터이미 하나의 준거점처럼 자리해 온 이름이다. 음악학자 김춘미 교수가 백병동을 두고 “베를린에 윤이상이 있다면 서울에는 백병동이 있다”는 취지로 언급한 적이 있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이 표현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한국 현대음악사 안에서 그가 차지하는 상징적 위치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말로 읽힌다. 윤이상이 국제적 차원에서 한국 작곡가의 존재를 세계 음악계에 각인시킨 인물이라면, 백병동은 서울을 중심으로 창작과 교육의 현장에서 한국 현대음악의 지속성을 구축한 작곡가라는 의미에서이다. 백병동의 음악을 몇 개의 대표작으로 정리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어딘가 불충분하게 느껴진다. 그의 작품은 특정한 한두 곡으로 기억되기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하나의 작곡 언어와 사유 속에서 이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무엇보다 먼저 느껴지는 것은 소리의 절제와 시간의 깊이다. 음향은 과장된 표정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서로 다른 밀도와 간격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음과 음 사이의 간격,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침묵은 음악의 흐름을 멈추게 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구조를 형성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이러한 특징은 백병동 음악의 중요한 작곡 태도와 연결된다. 김춘미는 『한국 현대음악 작곡가 백병동 연구』에서 그의 음악을 설명하며 “화성과 리듬은 서로 작용하면서 유기적인 운동을 형성한다”고 썼다. 이 문장은 백병동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의 작품에서 화성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음의 흐름을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리듬 역시 전면에 나서 강한 인상을 만드는 대신 음악의 호흡을 조절하며 흐름을 이어 준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건너뛰기보다 하나의 선처럼 이어지며 서서히 형성된다. 이 점에서 그의 음악은 서구 현대음악의 어법을 사용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시간의 감각을 품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급격한 변화나 극적인 대비보다는 미묘한 변화와 지속되는 긴장 속에서 음악이 서서히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러한 시간의 감각은 동아시아 음악 전통에서 발견되는 긴 호흡의 감각과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전통의 재현은 아니다. 백병동의 음악에서 전통은 표면적인 인용이나 장식으로 호출되기보다 음향을 조직하는 하나의 감각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듣고 있으면 음악이 어떤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기보다 하나의 공간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소리는 그 공간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며, 때로는 침묵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경계 위에서 머문다. 이런 방식의 음악은 화려한 인상을 남기기보다 오래 지속되는 여운을 남긴다. 동양적 감각을 현대 작곡기법 속에서 탐구했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은 일본 작곡가 다케미쓰 도루(Toru Takemitsu)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음향의 색채적 표면보다 구조적 긴장과 호흡의 지속성에 더 무게를 둔다는 점에서는 그와 분명히 구별된다. 또한 음향과 구조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폴란드 작곡가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Witold Lutosławski)를 연상시키는 면도 있다. 물론 이러한 비교는 어디까지나 음악적 태도의 유사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 동일한 미학적 계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백병동의 음악은 결국 한국 현대음악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고유한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필자가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하던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현대음악 연주 현장에서 자주 접할 수 있었던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백병동이었다. 특히 한국페스티벌앙상블( Korea Festival Ensemble )은 그의 작품을 꾸준히 프로그램에 올리며 당시 창작음악을 적극적으로 소개한 단체였다. 최근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이 창단 40주년을 맞았다는 사실은, 필자에게 그 시절의 청취 경험을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되돌려 놓는다. 1986년 창단된 이 단체는 지난 40년 동안 국내외 현대음악의 지속적인 연주와 위촉, 창의적인 기획을 통해 한국 현대음악의 중요한 연주 기반을 형성해 왔다. 그러므로 필자가 그 무대에서 백병동의 작품을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은 단순한 개인적 인상이 아니라 동시대 한국 현대음악의 실제 연주 현장에서 형성된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젊은 음악학도에게 백병동의 음악은 교과서 속 이름이 아니라 실제 연주 현장에서 경험되는 현재형의 음악이었다. 그 시기 들었던 작품 가운데 특히 깊이 남아 있는 곡이 〈사잇소리〉이다. 백병동은 작품 제목을 지나치게 설명적으로 붙이기보다 절제된 방식으로 명명하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삼중주, 사중주, 혹은 관현악곡과 같은 비교적 중립적인 제목이 많았고, 때로는 작품의 성격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무제에 가까운 명명도 적지 않았다. 그런 그가 ‘사잇소리’라는 지극히 한국어적인 제목을 붙였다는 사실은 오래도록 인상에 남았다. ‘사잇소리’라는 말은 언어적으로도 경계와 접속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하나의 음 이름이라기보다 음과 음 사이에서 형성되는 미묘한 울림, 혹은 그 사이에서 살아나는 음향의 기운을 가리키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 점에서 이 제목은 백병동의 작곡 미학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이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필자가 독일로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곡이 바로 이 〈사잇소리〉였다. 그래서인지 대금의 소리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하나의 파장처럼 남아 있었다. 화려한 선율이라기보다는 길게 이어지는 호흡, 미묘하게 흔들리는 음의 결, 그리고 그 사이에서 퍼져 나가던 공간감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지금도 백병동의 음악을 떠올리면 먼저 그 대금의 소리가 마음속에서 울린다. 그것은 분명한 멜로디라기보다는 조용히 이어지는 하나의 선에 가깝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양금의 존재이다. 양금은 한국 전통음악에서 그 사용 빈도가 그리 많지 않은 악기이지만, 백병동은 몇몇 작품에서 이 악기를 비교적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대사 Ⅱ〉와 같은 작품에서는 대금과 양금이 함께 등장하고, 〈오늘, 98년 9월〉에서는 해금과 양금의 조합이 사용된다. 필자가 기억하는 〈사잇소리〉의 공연에서도 양금을 떠올린다. 대금의 호흡과 양금의 타현적 울림이 만날 때 음악은 선율의 단순한 진행을 넘어 음향의 겹침과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음향의 층위에서 ‘사잇소리’라는 제목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 듯하다. 백병동의 음악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이미지는 화가 김환기의 회화 속 선이다. 김환기의 화면에서 선은 단순한 윤곽이 아니라 화면 전체의 호흡과 운동을 만들어 내는 구조가 된다. 백병동의 음악에서도 개별 음들은 사건처럼 분절되기보다 서로 이어지며 하나의 선을 형성하고, 그 선은 시간 속에서 긴 흐름을 만들어 낸다. 이 비유는 직접적인 영향 관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필자가 느끼는 미학적 유사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백병동의 음악을 “조용한 선의 음악”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에는 이 비유가 일정한 설득력을 갖는다. 필자가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서울대학교에서 그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연구실에서 일주일에 한 번 이어지던 수업의 분위기는 늘 조용했다. 교수님의 말투는 낮고 단정했으며 과장된 표현이 거의 없었다. 그 목소리를 떠올릴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의 음악도 그 목소리와 닮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크게 말하지 않지만 말의 여백 속에 더 많은 것을 남기는 방식. 바로 그런 점에서 백병동의 음악은 사람의 성정과 작품 세계가 드물게 깊이 호응하는 경우를 보여준다. 교수님은 필자의 삶의 방향에도 작은 흔적을 남긴 분이다. 한 번의 상담과 몇 마디의 조언이 때로는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미국이 아니라 독일로 향하게 된 필자의 진로에도 그때 나누었던 대화가 작은 계기로 남아 있다. 그래서 백병동은 단지 한국 현대음악사의 한 이름이 아니라, 필자에게는 삶의 갈림길에서도 조용한 방향을 제시했던 존재로 기억된다. 백병동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김춘미의 책이 함께 떠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책은 단순히 한 작곡가의 작품 목록이나 생애를 정리한 연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한국 현대음악의 한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창이었다. 그 책을 통해 배운 것은 한 작곡가의 음악을 이해하는 일이 단순히 악보 분석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작품은 시대와 사유의 맥락 속에서 읽혀야 하며, 한 작곡가의 언어는 그가 살아낸 시간과 음악적 환경 속에서 비로소 입체성을 얻는다. 돌이켜보면 그 책은 필자의 음악학적 시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한국에 갈 때 가끔 우연히 교수님을 공연장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여전히 건강한 모습이셨고 늘 마른 체구에 소식하시며 삶을 단순하게 유지하려는 분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런 모습 역시 그의 음악과 멀지 않았다. 과도한 제스처를 경계하고 남는 것보다 덜어 내는 쪽을 택하며 무엇보다 조용한 질서를 지키는 삶. 그의 음악이 왜 그렇게 들렸는지를 설명하는 하나의 생활적 근거가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백병동은 화려한 선언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작곡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평생 조용히 음악을 써 온 작곡가였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음악은 더 오래 남는다. 어떤 작곡가는 특정한 명곡 하나로 기억되지만 어떤 작곡가는 하나의 음악적 태도로 기억된다. 백병동은 후자에 속하는 작곡가였다. 그의 음악은 거대한 몸짓으로 시대를 장악하기보다 조용한 선을 그으며 오래 지속되는 울림을 남겼다. 그리고 그 선은 이제 작곡가가 부재한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 글 | 노유경 Dr. Yookyung Nho-von Blumröder음악학 박사, 쾰른대학교 출강해금앙상블 K-YUL…

[정봉수 칼럼]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계약의 우선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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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봉수 노무사, 강남노무법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봉수 칼럼니스트]    I. 쟁점 판례  최근 법원의 판결이 기존과 달라 실무에서 혼선을 주고 있다. 예를 들자면,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 조항이 근로자의 과반수 동의나 과반수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어 적법하게 진행된 경우에도 이에 동의하지 않는 근로자는 계속해서 유리한 조건의 근로계약이 적용된다는 판결이다. 기존에는 사용자가 기업 대내외적으로 경영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취업규칙에 규정된 기존의 근로조건을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저하시킬 경우에는 비록 소수의 반대자가 있다 하더라도 회사 전체에 적용되는 취업규칙이 근로자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동의하지 않은 소수의 근로자들의 근로계약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 조항이 있다면 그 조항이 적용된다는 판결을 하고 있다. 이러한 판례의 근거는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롭게 결정하여야 하고(근기법 제4조),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상 이견이 있을 때에는 근로계약의 유리한 조건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는 기준이다(근기법 제97조). 이럴때, 사용자 측에서는 판례의 근거에도 적합하면서 어떻게 하면 취업규칙을 새롭게 변경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이 생긴다. 이와 관련해서, 근로계약과 유리한 조건 우선의 원칙에 관한 법령과 최근판례를 살펴보고, 적합한 근로계약 작성 방법에 대하여 검토해보고자 한다.     II. 쟁점 판례의 내용 1. 대상판결 : 대법원 2019. 11. 14. 선고 2018다200709 판결 (1) 사실관계  이 사건 사용자와 근로자는 2014년 3월경 기본연봉을 70,900,000원으로 정한 연봉계약을 체결하였다. 위 기본연봉을 월로 환산하면, 5,908,330원이 된다. 사용자는 2014년 6월 25일 소속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 취업규칙인 “임금피크제 운용세칙”을 제정, 공고하였다. 이 세칙은 연봉계약에 따른 기본연봉을 정하고, 정년이 2년 미만 남아 있는 근로자에게는 ‘임금피크 기준연봉’의 60%, 정년이 1년 미만 남아 있는 근로자에게는 ‘임금피크 기준연봉’의 40%를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 사용자는 2014년 10월 1일 부터 2015년 6월 30일 까지는 이 사건 근로자의 정년이 2년 미만 남아 있다는 이유로 월 기본급의 60%인 3,545,000원을, 2015년 7월 1일 부터 2016년 6월 30일(원고의 정년퇴직일)까지는 월 기본급의 40%인 2,363,330원을 지급하였다. 이 사건 사용자가 2014년 9월 23일 임금피크제 적용에 따른 임금 내역을 통지하자, 이 사건 근로자는 사용자에게 임금피크제의 적용에 동의하지 아니한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  (2) 판결요지  근로기준법 제97조는 개별적 노사 간의 합의라는 형식을 빌려 근로자로 하여금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조건을 따르게 하도록 하는 것을 막아 종속적 지위에 있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다. 이러한 규정 내용과 입법 취지를 고려하여 근로기준법 제97조를 다시 해석하면,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제시한 개별 근로계약 부분은 유효하고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우선하여 적용된다. 근로기준법 제94조가 정하는 집단적 동의는 취업규칙의 유효한 변경을 위한 요건에 불과하므로, 취업규칙이 집단의 동의를 받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경우에도 근로기준법 제4조가 정하는 근로조건 자유결정의 원칙은 여전히 지켜져야 한다. 따라서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변경된 취업규칙은 집단적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기존의 개별 근로계약 부분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다고 할 수 없다. 이 경우에도 근로계약의 내용은 유효하게 존속하고, 변경된 취업규칙의 기준에 의해 유리하게 근로계약의 내용을 변경할 수 없으며, 근로자의 개별 동의가 없는 한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계약의 내용이 우선하여 적용된다.    2. 대상판결: 대법원 2017. 12. 13. 선고 2017다26138 판결  (1) 사실관계  이 사건 사용자와 근로자는 실제 근무한 날짜가 월 20일 이상인 경우 60만원의 만근수당을 지급하기로 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였다. 사용자는 자금상황이 악화되자 2016년 4월 노사협의회를 개최하여 자구계획안을 의결하고, 2016년 4월 26일에 소속 근로자 206명 중 144명(69.9%)의 근로자들로부터 “기본임금 외에 모든 약정수당을 폐지한다. <중략> 본 합의사항은 2016년 5월 1일 부터 시행한다”는 내용의 자구계획안에 동의한다는 취지의 동의서를 제출받았다. 사건 근로자는 변경안에 대하여 동의를 하지 않았고, 자구계획안에 의해 근로조건이 변경된 근로계약서에 서명하거나 날인하지도 않았다. 사용자는 자구계획안에 대하여 근로자들 과반수가 동의한 이상 근로자에게 약정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변경된 근로계약 조건에 근거하여 이 사건 근로자에게 지급해오던 만근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2) 판결요지[1]    취업규칙은 그것이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을 그 부분에 한해서만 무효로 하는 효력을 가질 뿐이고, 취업규칙에서 정한 내용보다 근로계약에서 정한 근로조건이 근로자에게 유리한 것일 때에는 당연히 근로계약에서 정한 근로조건이 취업규칙보다 우선하여 유효하게 적용된다. 또한 취업규칙이 근로계약과의 관계에서 최저 기준을 설정하는 효력만 가지는 이상, 근로계약을 체결한 이후 시점에 취업규칙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되었다고 하여 유리한 근로계약에 우선하여 불리하게 변경된 취업규칙이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    III. 판례의 법리와 실무적 의미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관하여 무효로 한다. 이 경우 무효로 되는 부분은 취업규칙에 정한 기준에 따른다(근기법 제97조). 그러므로, 근로계약의 기준은 취업규칙과 같거나 더 유리한 조건을 유지해야 한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의 근로조건이 서로 상이할 때는 근로계약의 유리한 조건이 우선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관련 판례로 (1)근로계약에 의해 그동안 지급되었던 만근수당을 취업규칙을 통해 더 이상 지급되지 않도록 유효하게 변경하였다고 하더라도 그에 동의하지 않은 개별 근로자의 경우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계약이 우선하여 적용된다.[2] (2) 근로자와 개별 근로계약에서 연봉을 특정한후 집단적 동의로 유효하게 변경된 취업규칙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연봉을 대폭 삭감한 경우 기존의 개별 근로계약이 집단적 동의로 유효하게 변경된 취업규칙보다 우선하여 적용된다.[3] (3) 취업규칙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변경되었다고 하더라도 해당 근로자가 그 취업규칙의 변경에 동의하는 등 특별한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 한 취업규칙이 아닌 기존의 유리한 근로계약이 우선 적용된다.[4]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조건에 대해 기본적인 입장에서 불구하고, 최근 판례는 집단 동의방식을 거부한 소수 근로자의 근로계약서에 기재된 근로조건의 내용은 근로조건에 유리한 조건 우선의 원칙에 따라 계속 적용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는 근로기준법 제4조의 근로조건의 대등한 결정원칙을 강조하면서, 사용자의 일방적 근로조건의 저하조치를 예방하기 위한 노동법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유리한 조건 우선(그람:정하은) ⓒ강남 소비자저   [1] 원심은 울산지방법원 2017. 6. 14. 선고 2016가합23102 판결, 항소심도 동일한 판단을 하고, 사용자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대법원은 심리불속행으로 이 사건 사용자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2] 울산지법 2017. 6. 14. 선고 2016가합23102 판결, 항소심 부산고법 2017. 8. 30. 선고 2017나53715 판결, 상고심 대법원 2017. 12. 13. 자 2017다387 판결(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임) [3] 대법원 2019. 11. 14. 선고 2018다200709 판결. [4] 대법원 2020. 4. 9. 선고 2019다297083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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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우리는 지금 인류가 한 번도 지나본 적 없는 저녁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아 하루의 피로를 서로의 어깨에 내려놓던 시간은 점점 희미해지고, 그 자리를 매끈한 화면의 빛이 대신 채우고 있다. 기술은 이제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것이라 믿었던 영역, 곧 위로의 형식마저 정교하게 모사하기 시작했다. 얼마전 전시장 한편에서 만난 AI는 지치지 않는 목소리와 상처받지 않는 마음으로 언제나 준비된 친절을 건넸다. 기도보다 빠른 응답과 결함 없는 공감은 경이로우면서도 어딘가 서늘한 여운을 남겼다. 기술은 놀랍도록 정확하게 인간의 빈자리를 찾아온다. 그러나 그 편리함의 이면에서 우리는 관계의 상처를 감수할 용기와 느리게 서로를 이해하던 시간을 조용히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일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사람은 늦고, 변하고, 때로 떠난다. 사랑은 언제나 균열을 남기고 관계는 쉽게 완성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인간의 위로는 무겁다. 함께 흔들려 본 기억이 있는 사람만이 타인의 어둠을 진심으로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우리의 능력을 확장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의미를 대신 살아 주지는 못한다. 의미는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상실 뒤에 남겨지는 긴 침묵 속에서, 그리고 다시 손을 내미는 결심 속에서 천천히 형성된다. 기술은 우리의 손을 노동에서 해방시켰다. 이제 남은 일은 그 자유로운 손으로 다시 서로를 붙잡을 것인가,아니면 차가운 화면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 시대의 질문은 기술의 한계가 어디인가가 아니라,우리가 선택할 인간의 온도가 무엇인가에 있다. 속도보다 체온을, 정답보다 질문을, 편리함보다 관계를 선택하는 사람들. 그들이 다음 세대에 남길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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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수 칼럼] 직장 내 괴롭힘의 판단기준과 세부내용

[정봉수 칼럼] 직장 내 괴롭힘의 판단기준과 세부내용

▲사진=정봉수 노무사, 강남노무법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봉수 칼럼니스트]  칼럼 < 직장내 괴롭힘의 판단기준 > 1. 사용자의 업무지시권과 근로자의 인격권과 충돌 직장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사용자의 업무지시권과 근로자의 인격권이 충돌되는 경우가 있다. 노동분쟁에서 사용자의 인사권 행사가 근로자의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에는 민법상의 불법행위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사용자의 업무지시권은 인사권으로 기업질서의 유지와 확립을 위해 사용자가 가지는 고유한 권한이다. 사용자의 인사명령에 대해 법원은 인사권자인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므로 업무상 필요한 범위에서는 상당한 재량을 가진다고 한다. 이에 반해, 헌법재판소는 근로의 권리가 “일할 자리에 관한 권리” 뿐만 아니라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도 함께 내포하고 있고, 후자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자유권적 기본권의 성격도 갖고 있어 건강한 작업환경, 일에 대한 정당한 보수, 합리적인 근로조건의 보장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등을 포함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업무의 적정범위에 대한 판단에 있어 사용자의 업무 지시권을 우위에 두어야 하는지 아니면 근로자의 인격권 보호를 우위에 두어야 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 경우 업무상 적정범위는 ‘이익형량’을 통해서 위법성 여부가 판단되어야 한다. 직장내 괴롭힘의 성립요건 중 ‘업무상 적정범위 일탈’ 여부는 사용자와 근로자의 기본권이 상호 조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목적에 부합하는 이익형량이 요구된다. 즉, 두 기본권이 충돌할 경우 어느 기본권을 우위에 두어야 하는지의 여부는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용인될 수 있는 정도의 것인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없거나 상당성 결여 여부 등을 종합하여 개별적, 상대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다만, 직장내 괴롭힘의 문제는 힘의 불균형을 전제로 하여 발생되고 근로자의 인격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인격권 보호에 주안점을 두고 피해근로자의 관점에서 다소 상향된 이익형량이 요구된다.    2. 직장내 괴롭힘의 판단기준  법원이 제시한 직장내 성희롱의 위법성 판단요소와 기준을 살펴보면 직장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괴롭힘 행위인지의 여부는 “①위법행위와 관련한 행위자와 피해자의 관계, ②행위의 동기와 의도, ③시기와 장소 및 상황, ④피해자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반응의 내용, ⑤행위의 내용과 정도, ⑥행위의 반복성이나 지속성 등을 종합하여 노동인격의 침해여부를 가려야 할 것이다.  이를 단순히 정리하면, 사용자가 지위를 이용하여(권력관계), 업무와 관련하여(업무관련성),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행동(괴롭힘, 언동 등)을 함으로써, 인권 및 인격권을 침해하거나 고용환경을 악화시키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직장내 괴롭힘의 판단에 있어 행위자인 사용자는 권한 행사자로서 외관을 갖추고 있고, 피해자인 근로자는 근로의무의 수행원으로서 자발적 동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기준을 가지고 개별적으로 검토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면 직장내 괴롭힘 여부 판단에 있어 개별 사안별로 분명한 기준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 직장내 괴롭힘의 세부내용 >  1. 지위의 활용: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 등에서의 우위  직장내 괴롭힘은 조직문화나 권위주의적 위계질서가 강한 곳에서 주로 발생한다. 이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권력형,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행위의 형태로 주로 발생한다.  우위성이라고 하면 피해자가 괴롭힘 행위에 대해 저항 또는 거절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은 관계를 의미한다. 지위의 우위는 괴롭힘 행위자가 지휘명령 관계에서 상위에 있거나 직접적인 지휘명령 관계가 아니어도 직위, 직급체계상 상위에 있음을 이용하는 것이다. 관계의 우위는 행위자가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지는 특정 요소에 대해 사업장 내에서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평가를 바탕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지 않는다. 2. 업무일탈: 업무의 적정범위 이상의 행위  업무의 적정범위를 넘는 것으로 인정되는 행위는 다음의 7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폭행 및 협박 행위: 신체에 직접 폭력을 가하거나 물건에 폭력을 가하는 등 직, 간접의 물리적 힘을 행사하는 폭행이나 협박행위는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은 행위이다.  2) 폭언, 욕설, 험담 등 언어적 행위: 공개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등 제3자에게 전파되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 정도인 것으로 판단되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은 행위이다. 특히, 지속 반복적인 폭언이나 욕설은 피해자의 인격권을 심각하게 해치고 정신적인 고통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행위이다.  3) 사적 용무 지시: 개인적인 심부름을 반복적으로 시키는 등 인간관계에서 용인될 수 있는 부탁의 수준을 넘어 행해지는 것은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은 행위이다. 예)사적인 심부름 등 개인적인 일상생활과 관련된 일을 하도록 지속적, 반복적으로 지시하는 것 4) 집단 따돌림과 배제시킴: 업무수행 과정에서의 의도적 무시와 배제는 사회통념을 벗어난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선 행위이다. 예) 정당한 사유없이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제공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시키는 것. 정당한 이유없이 부서이동 또는 퇴사를 강요하는 것. 정당한 이유없이 훈련, 승진, 보상, 일상적인 대우 등에서 차별하는 것 등.   5) 업무와 무관한 일을 반복 지시: 근로계약 체결 시 명시했던 업무와 무관한 일을 근로자의 의사에 반하여 지시하는 행위가 반복되고 그 지시에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선 행위이다. 예)근로계약서 등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허드렛일만 시키거나 일을 거의 주지 않는 것. 6) 과도한 업무 부여: 업무상 불가피한 사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당업무수행에 대해 물리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 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등 그 행위가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선 행위이다.  7) 원활한 업무수행을 방해하는 행위: 업무에 필요한 주요 비품(컴퓨터, 전화 등)을 제공하지 않거나, 인터넷 사내 인트라넷 접속을 차단하는 등 원활한 업무수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사회 통념을 벗어난 행위로서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선 행위이다. 3. 인적, 환경적 침해행위 사용자나 근로자가 다른 근로자에게 직장내 괴롭힘을 통해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다. 사업주가가 의도적으로 특정 근로자를 화장실 앞으로 업무자리를 옮겨 창피를 주거나 근로자가 제대로 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경우 근무환경을 악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행위자의 의도가 없었더라도 그 행위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느꼈거나 근무환경이 예전보다 나빠졌다면 인정될 수 있다.   ▲사진=괴롭힘(그림:정하은) ⓒ강남 소비자저널

[손영미 칼럼] 봄의 향연, 네 개의 목소리가 피워낸 빛의 하모니 ‘Four Divas’ 정기연주회, 3월 23일 영산아트홀 개최

[손영미 칼럼] 봄의 향연, 네 개의 목소리가 피워낸 빛의 하모니 ‘Four Divas’ 정기연주회, 3월 23일 영산아트홀 개최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오는 2026년 3월 23일(월) 오후 7시 30분, 서울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네 명의 소프라노가 선사하는 특별한 봄의 무대, <Four Divas 정기연주회>가 열린다. ‘디바(Diva)’라는 호칭은 단순히 노래 실력이 뛰어난 성악가를 넘어, 한 시대의 감성을 대변하고 무대 위에서 자신의 삶과 예술적 깊이를 동시에 증명해 내는 이들에게 허락되는 영광스러운 이름이다. 이번 공연은 한국 성악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네 명의 소프라노김보영(예술총감독), 김미현, 김성현, 백현애가 한자리에 모여, 각기 다른 음색을 하나의 봄빛으로 엮어낼 예정이다. 디바의 전통을 잇는 오늘의 목소리 오페라의 역사 속에서 디바는 늘 시대를 움직이는 상징이었다. 20세기 신화 마리아 칼라스부터 레나타 테발디, 조안 서덜랜드, 그리고 현대의 안나 네트렙코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목소리라는 악기로 당대의 미학을 번역해 왔다. 이번 <Four Divas> 콘서트는 이러한 디바의 전통을 계승하며, 동시에 한국 성악의 오늘을 보여주는 자리다. 특히 예술총감독을 맡은 김보영을 필두로 대외협력홍보감독으로 활동 중인 김미현, 김성현, 백현애 등 화려한 프로필을 자랑하는 중견 성악가들이 각자의 해석과 색채를 아낌없이 펼쳐 보인다는 점에서 그 무게감이 남다르다. 클래식에서 팝까지, 경계를 허무는 프로그램 이번 연주회는 하나의 완결된 서사처럼 구성되었다. 공연의 문을 여는 곡은 아만다 맥브룸의 <The Rose>. 가시 돋친 겨울을 견디고 피어나는 장미처럼, 네 명의 소프라노가 합창으로 삶과 사랑의 희망을 노래하며 관객의 마음을 연다. 이어지는 무대는 정통 클래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 가곡 솔로: 아르디티의 <입맞춤(Il Bacio)>,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 등 낭만적인 감성이 짙은 곡들로 개성을 드러낸다. • 오페라의 정수 푸치니 <라 보엠>의 ‘행복한 마음으로 떠났던 곳으로’,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아, 그이인가-언제나 자유롭게’ 등 드라마틱한 아리아들이 배치되어 디바들의 진면목을 확인시킨다. • 앙상블의 묘미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의 이중창’, 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 중 ‘뱃노래’ 등은 두 목소리가 빚어내는 환상적인 하모니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중성이다. ‘Que Sera, Sera’, ‘Evergreen’ 등 익숙한 영화음악 메들리와 ‘강 건너 봄이 오듯’, ‘고향의 봄’ 같은 한국 가곡 메들리는 성악이 우리 곁의 보편적인 예술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완벽한 앙상블을 위한 조력자들 이번 공연은 목소리뿐만 아니라 탄탄한 연주진이 뒤를 받친다. 피아노 최은순, 바이올린 이혜림, 첼로 배승현, 퍼커션 김재훈 등 각 분야의 전문 연주자들이 협연하여 더욱 풍성하고 입체적인 사운드를 완성할 예정이다. 네 개의 목소리, 하나의 계절이 되다 공연의 대미는 지중해의 태양처럼 강렬한 에너지를 담은 칸초네 메들리(<La Spagnola>, <Volare> 등)가 장식한다. 겨울의 침묵을 깨고 솟아오르는 봄빛처럼, 이들의 노래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계절을 살아갈 환희와 에너지를 전할 것이다. 음악은 한 사람의 호흡에서 시작되지만, 여럿이 함께 울릴 때 비로소 하나의 계절이 된다. 2026년 3월, 영산아트홀에서 울려 퍼질 네 명의 디바의 목소리는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온 가장 찬란한 봄의 서곡이 될 것이다. ▲사진=Four Divas 정기연주회 포스터 ⓒ강남 소비자저널 ▲사진=Four Divas 정기연주회 프로필 ⓒ강남 소비자저널 ▲사진=Four Divas 정기연주회 프로그램 ⓒ강남…

[김종우 칼럼] 반려동물산업 에세이_105 펫케어관리전문가, 반려동물 시대의 새로운 전문 직업으로 주목

[김종우 칼럼] 반려동물산업 에세이_105 펫케어관리전문가, 반려동물 시대의 새로운 전문 직업으로 주목

▲사진=김종우 대한반려동물협회 회장 ⓒ강남구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김종우 칼럼니스트] 최근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반려동물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반려산업의 변화 속에서 단순한 돌봄을 넘어 체계적인 관리와 상담을 제공하는 ‘펫케어관리전문가’라는 새로운 직무가 필요하다. 펫케어관리전문가는 반려동물의 건강, 생활, 정서, 환경, 보호자 교육까지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계획하는 전문 인력으로, 반려동물과 보호자의…

[손영미 칼럼] 왕과 ‘사는’ 남자, 권력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남을 것인가

[손영미 칼럼] 왕과 ‘사는’ 남자, 권력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남을 것인가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최근 개봉한 영화 ‘ 왕과 사는 남자‘ 가  2026년 2월 4일 개봉 후 흥행을 이어가며 3월 6일 1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3월 8일 기준 1,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영화는 폐위된 단종 이홍위(박지훈)와 촌장 엄흥도(유해진)의 관계를 중심으로, 유배지 영월에서의 시간을 그린 사극이다.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이유는 이 작품이 단순한 사극이 아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왕을 모시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권력에서 밀려난 한 인간과 그 곁을 끝내 떠나지 않는 또 다른 인간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 영화는 왕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함께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가깝다. 우리는 지도자를 말할 때 흔히 힘을 떠올린다. 결단력, 카리스마, 통치력 같은 단어들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익숙한 문법을 조용히 뒤집는다. 왕위에서 쫓겨난 단종은 더 이상 권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왕관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한 인간의 품위뿐이다. 그리고 엄흥도는 그 곁에서 묻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람 곁에 남는가. 장항준 감독이 이 작품의 핵심으로 말한 인간의 마지막 ‘도덕의 마지노선’이라는 화두도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각박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효율과 계산을 먼저 배운다. 손해 보지 않는 법, 휘말리지 않는 법, 마음을 깊이 주지 않는 법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세계가 끝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그 모든 계산 밖에서도 누군가가 마지막 선을 지키기 때문이다.…

[손영미 칼럼] 비참함 가운데 명랑하게, 삶이라는 캔버스에 대하여

[손영미 칼럼] 비참함 가운데 명랑하게, 삶이라는 캔버스에 대하여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스페인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은 산부인과 의사의 손에서 시작해 장의사의 손에서 끝나는 길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세상에 나온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손에 의해 세상을 떠난다. 그 사이의 시간만이 우리가 직접 걸어야 할 길이다. 그 길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리고 생각보다 거창하지도 않다. 인생의 대부분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차 한 잔을 마시고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저녁이 되면 하루를 접는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씩 자신의 생을 조금씩 사용한다. 하지만 그 길이 언제나 환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살면서 몇 번쯤 자신의 삶이 설명되지 않는 구간을 지나게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시간, 아무리 애써도 풀리지 않는 매듭,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독. 그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삶이란 축복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나태주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비참함 가운데 명랑한 것이다.” 이 문장은 삶의 모순을 말하는 동시에 삶을 견디는 태도를 말해 준다. 명랑함은 조건이 좋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