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봄기운이 문턱에 닿던 입춘(立春)날, 푸근한 햇살이 하루를 감싸던 저녁에 필자는 뜻밖에도 가장 깊은 겨울을 만났다. 계절은 분명 봄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음악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밤 마주한 것은 19세기 초, 고독의 끝에서 태어난 한 인간의 겨울의 《겨울나그네》였다. Wilhelm Muller 의 시에 Franz Schubert 곡을 붙인 이 작품은 바리톤 Gerard Kim, (김동섭)피아니스트 Seonmi Choi(최선미)의 연주로, 2026년 2월 4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K&L 뮤지엄(선바위역 부근)에서 연주되었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24곡으로 이루어진 연가곡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히 ‘연가곡’이라 부르는 순간, 우리는 이 음악이 도달한 인간적 깊이를 놓치게 된다. 이 연가곡집은 사랑의 실패를 출발점으로 삼아, 한 인간이 세계와의 연결을 하나씩 끊어내며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철학적 삶의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눈 덮인 길 위를 걷는 나그네는 더 이상 목적지를 향하지 않았다. 그는 도착을 기대하지 않았고, 위로를 구하지도 않았다. 《겨울나그네》의 여정은 여행이 아니라 내면의 순례에 가까웠다. 특히 인간이 무너져 가는 과정이기보다는, 무너짐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직시해 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이 작품이 유독 깊은 울림을 지녔던 이유는, 슈베르트 말년의 고독이 빌헬름 뮐러의 시와 정밀하게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나그네》가 작곡된 1827년, 슈베르트는 병과 가난, 사회적 고립 속에 놓여 있었다. 명성은 멀었고, 죽음은 더 이상 추상이 아니었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이 노래들은 나를 그 어느 작품보다 괴롭혔다”고 말했는데, 그 말은 감상이라기보다 삶의 상태에 대한 고백처럼 들렸다. 뮐러의 시 속 나그네는 사랑을 잃은 한 개인이었지만, 슈베르트의 선율을 통과하며 그는 존재 그 자체로 고독한 인간이 되었다. 시가 언어로 기록한 절망이라면, 음악은 그 절망을 견디는 호흡이었다. 슈베르트는 설명하지도, 해석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자리에 머물렀다. 이번 바리톤 김동섭의 갤러리 살롱 콘서트는 그 여정을 정공법으로 완주한 무대였다. 미국 무대를 앞두고 《겨울나그네》만 무려 16회에 걸쳐 연주해 온 바리톤 김동섭은 연주중 물 한 모금, 과장된 제스처 하나 없이 24곡을 단숨에 걸어 나갔다. 어느 한 음도 밀리거나 당기지 않았고, 소리는 유유히 흘렀다. 노련함은 기교가 아니라 절제된 태도로 드러났다. 그는 ‘노래하는 성악가’라기보다, 길 위를 걷는 인간으로 무대에 서 있었다. 1부에서 나그네는 조용히 세상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Gute Nacht에서의 이별에는 원망이 없었고, Der Lindenbaum에서는 위안의 기억마저 돌아갈 수 없는 유혹으로 변해 있었다. Auf dem Flusse에서 얼어붙은 강은 고요한 표면 아래 감춰진 격렬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 모든 순간에서 피아노는 반주가 아니라 풍경으로 존재했다. 눈길과 바람, 침묵을 만들어내며 나그네의 내면을 비추고 있었다. 2부에 이르러 고독은 더 이상 상황이 아니었다. Einsamkeit에서 고독은 존재의 상태로 선언되었고, Die Krähe에서는 죽음의 그림자가 위협이 아닌 동행자로 다가왔다. 인간은 이 지점에서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그저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 3부에서 희망은 환상으로, 안식은 거절로 바뀌었다. Das Wirtshaus에서조차 죽음은 문을 닫았고, 결국 Der Leiermann에서 나그네는 자신보다 더 고독한 존재를 마주했다. 말은 없었고, 설명도 없었다. 다만 하나의 질문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너와 함께 가도 되는가?” 이번 《겨울나그네》는 슬픔을 과시하지 않았다. 감정의 과잉 없이 텍스트의 무게를 끝까지 존중하며 겨울을 통과했다. 성악은 감정을 연기하지 않고 고독을 견디는 방식으로 노래했고, 피아노는 음악이 아니라 시간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겨울나그네》는 위로하지 않았다. 대신, 인간이 끝내 혼자가 되는 순간에도 어떻게 자기 자신과 동행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었다. 그것이 이 작품이 두 세기를 건너 오늘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게 남아 있는 이유였다. 마치며… ‘겨울나그네’ 는 슬픔을 노래하지 않았다.인간이 고독을 피하지 않고, 삶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는 순간을 증언하고 있었다. ▲사진=공연 후 인사하고…
[태그:] 손영미 시인
[손영미 칼럼] 노래는 경쟁하지 않는다
– K-가곡 슈퍼스타 코리아 가 우리에게 묻는 것 –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K-가곡 슈퍼스타 코리아는 단순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 무대는 잊혀 가는 장르를 소환하기 위한 기획도, 새로운 스타를 급조하기 위한 이벤트도 아니다. 이 프로그램의 출발점에는 하나의 분명한 질문이 놓여 있다. 지금 이 시대에도 가곡은 여전히 살아 있는 언어인가. …
[손영미 칼럼] 독서와 출간의 힘 ’자클린의 눈물』을 세상에 내놓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시집 ‘자클린의 눈물』 을 출간하고 나서 많은 분들이 이렇게 물었다. “드디어 시집을 내셨네요. 홀가분하시죠?” 솔직히 말하면, 홀가분함보다는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고, 조금 더 공부하게 되었으며, 조금 더 내 문장 앞에서 겸손해졌다. 책이 나오기 전까지 나는 ‘쓰는 사람’이었지만, 책이 나오고 난 뒤의 나는 ‘책으로 말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출간은 끝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한 단계 바꾸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책을 꿈꾸는 이들, 공부를 미루는 이들,‘아직은 부족하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조용히 건네고 싶은 이야기로 남았다. 1. 책은 ‘재능’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다 『자클린의 눈물』은 어느 날 갑자기 쓰인 시집이 아니다. 여러 해 동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시간의 축적이다.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붙들었던 시간이 결국 한 권이 되었다. 2. 완벽을 기다리면 영원히 출판하지 못한다 원고를 넘기기 전까지 나는 수없이 망설였다. “조금만 더 고치면…” 그러나 완벽은 오지 않았다. 대신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는 용기가 왔다. 출간은 완성의 증명이 아니라…
[손영미 칼럼] 철학적 사유와 시대적 소명AI 시대, 잃어버린 인간의 자화상
– 2026년 말띠해, 연극 〈에쿠스〉의 시대적 소명 길들여진 인간과 길들여지지 않은 인간, 말과 인간 사이에 사라진 것들…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오랜만에 대학 선배의 초대로 대학로를 찾았다. 몇 해 전 예술의 전당에서 이미…
[손영미 칼럼] 2025, ‘트리스탄과 이졸데 ’한국 오페라사의 새로운 도약점
“리하르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의 삶은 다르다.”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사랑, 그 해답 없는 질문을 향한 6시간의 대장정” 2025년 12월, 4~7 일 15:00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오후 3시에 시작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밤 8시 40분을 훌쩍 넘어 막을 내렸다. 총 340분 1부와 2부를 마치고 두 번의 휴식을 포함하면 거의 6시간 가까운 여정이었지만, 이 시간은 단순한 러닝타임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심연을 가로지르는 장정의 시간 체험에 가까웠다. 이번 공연은 국립오페라단 창단 이래 최초의 전막 국내 초연이었다. 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는 2024년 〈탄호이저〉에 이어 ‘바그너 3부작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번 무대는 그 여정의 두 번째 이정표였다. 2027년 〈니벨룽의 반지〉 완성을 향한 그의 비전은 시즌북 곳곳에 숨결처럼 배어 있었다. 1. 바그너 19세기의 가장 개인적인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는 모든 오페라의 대본을 직접 쓴 거의 유일한 작곡가다. 그에게 오페라는 음악에 머무르지 않고 문학·연극·철학·미술을 통합하는 총체예술이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내밀한 고백이 깃든 작품이다. 바그너가 후원자 베젠동크의 아내 마틸다를 향해 품었던 금지된 사랑,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의지 소멸’ 철학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그래서 이 오페라는 단순한 사랑의 비극이 아니라,‘낮의 거짓을 벗고 밤과 죽음의 진실로 향하는 존재론적 신화’에 가깝다. 2. 1막, 비극적 전주곡, 사랑 이전의 어둠 1막은 아일랜드에서 코널 해안으로 향하는 배에서 시작된다. 전주곡이 울리는 순간, 관객은 이미 역사적 화성 혁명인 트리스탄 화음의 긴장 속으로 가라앉는다. 젊은 뱃사람의 노래 뒤편에서는 오케스트라의 현대적이고 고독한 울림이 끊어질듯 이어지며, 분노한 이졸데와 침묵하는 트리스탄이 …그리고 브랑게네가 ‘독약 대신 사랑의 묘약’을 건네는 아이러니가 펼쳐지며, 비극의 씨앗은 이미 1막에서 조용히 돋아나고 있었다. 3. 2막, “밤이여, 내려오라. 낮은 거짓이고 밤은 진실이다. ” 2막은 바그너 오페라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길고 밀도 높은 사랑의 듀엣이며, 그의 실존적 고백과 철학이 가장 뜨겁게 발화하는 지점이다. 곧이어 두 사람은 선언한다. “낮은 우리를 속여 왔다. 밤만이 진실이며, 죽음만이 영원한 사랑이다.” 서울시향의 현악은 부드럽고 깊게 울렸고, 관악의 다채로운 결은 후기낭만주의 바그너 음향의 복잡한 구조를 정교하게 재현했다. 특히 플루트와 오보에의 선율은 〈니벨룽의 반지〉로 이어지는 바그너 세계의 ‘운명적 연결선’을 환기했다.…
[손영미 칼럼] AI 시대의 문학성과 작가의 주체 해석의 주권을 둘러싼 새로운 질문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신춘문예의 계절이 돌아오면 문학의 공기는 쉽게 감지될 만큼 예민해진다. 데뷔라는 제도적 문턱 앞에서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하고, 문장은 끝없이 의심되고, 창작자는 자신이 써 내려간 한 줄이 과연 자기 자신의 것인지를 묻는다. AI가 창작의 주변부를 넘어 중심 영역으로 들어온 지금, 이 질문은 이전보다 훨씬 더 불가피해졌다. AI는 금기인가, 아니면 새로운 감각을 여는 비밀 병기인가. 그러나 이 양극단의 논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도와 문학이 이 변화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이다. 문학은 언제나 변화의 한복판에서 스스로를 새롭게 구성해왔다. 활판 인쇄가 시의 형식을 흔들었을 때도, 타자기와 컴퓨터가 문장의 속도를 바꾸었을 때도 문학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술은 변해도 문학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문학을 지탱해온 것은 늘 쓰는 자의 의식, 쓰는 자의 세계였다. 오늘날의 AI 역시 그러한 연속선상에 있다. AI는 문장을 제안할 수 있고, 구조를 설계할 수 있으며, 심지어 감정의 모조품조차 그럴듯하게 흉내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기능은 결국 ‘원석’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은 원석을 받아들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문학은 해석을 요구하고, 경험을 통과한 언어를 요구하며, 세계관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고유한 결을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적 판단의 기준은 AI의 개입 여부가 아니라 창작자가 그 도움을 어떻게 자기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재배열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켰는가에 달려 있다. 이 지점에서 AI는 작가의 자리를 대체하지 못한다.…
K-클래식 탁계석 회장(문화평론가/음악비평가), 신간 시집 『자클린의 눈물』 저자 손영미 작가 인터뷰
[강남 소비자저널=탁계석 칼럼니스트] Q. 탁 :『자클린의 눈물』을 출간하셨는데, 몇 번째 시집인가요? A. 손 : 첫 번째 시집입니다. Q. 탁 : 이미 여러 권을 내신 줄 알았어요. A. 손 : 아 네~ 대학에서는 극작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소설과 드라마를 공부했습니다. 희곡과 소설을 쓰고, 칼럼과 음악 감상집을 집필하며 장르를 넘나들다 보니 , 많은 분들이 저를 전문 시인으로 알고 계시더군요. 시 공부는 10년 넘게 했지만, 정작 시집은 이제 첫 권을 냈습니다. 시, 등단도 2021년 이구요. 첫 시집의 구성에 대하여 Q. 탁 : 첫 시집의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A. 손 :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1부는 <사랑의 비유법>사랑에 관한 시선…
손영미 시인, 신작 시집 『자클린의 눈물』 출간 화제
‘노래가 사라지는 날, 인간의 고통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사진=손영미 시인 & 극작가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김은정 대표기자] 문학·음악·무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깊은 울림을 건네온 손영미 시인(작가·시인·칼럼니스트)이 신작 시집『자클린의 눈물』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나의 몸은 슬픔의 원본”이라고 고백하듯, 상처의 원본에서 빛의 자리까지 건너가는 영혼의 여정을 담아낸다.…
[손영미 칼럼] 테너 박세원 교수 추모 헌정 공연
‘한 시대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그가 남긴 빛, 그가 남긴 숨’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테너 박세원 교수 1주기 추모 헌정공연이 2025년 11월 25일(화)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렸다. 공연의 시작과 끝에는 제자들이 있었다. 제자들의 이중창과 앙상블, 그리고 마지막 합창까지…모든 순간이 스승을 향한 감사와 그리움으로 채워졌다. 공연 중간에는 생전 박 교수의 연주 영상이 상영되었는데, 특히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에서 알프레도 역으로 무대에 섰던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은 관객의 마음을 오래 머물게 했다. 극장은 잠시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해졌고, 이어진 박수는 그를 향한 깊은 존경의 울림이었다. 제자들이 선택한 프로그램은 마치 스승이 걸어온 예술적 발자취를 따라가는 듯했다. 푸치니와 베르디, 비제와 도니체티 그가 사랑했고 오랜 세월 무대에서 노래했던 오페라의 명장면들이 다시금 호흡을 얻었다. 음악 해설과 연주자들의 진심 어린 해석이 더해지며, 헌정공연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스승과 제자 사이의 깊은 인연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으로 완성되었다. 한 시대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어떤 목소리는 시간이 흘러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목소리를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이 걸어온 길과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서울대학교 성악과 교수로 오랜 세월 후학을 길러낸 테너 박세원 교수의 목소리가 바로 그러한 목소리였다. 그를 기리는 헌정공연이 열린 날, 공연장은 마치 한 장의 오래된 사진처럼 잔잔한 빛으로 가득했다. 화려함을 덜어낸 무대 위로 제자들의 노래가 스승의 기억을 조심스럽게 불러올렸고, 음악은 말보다 깊은 마음의 언어가 되어 객석을 채웠다. 무대 중간, 박 교수의 생전 영상이 스크린을 밝히자 공간은 순간 멈춘 듯했다. 특히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를 부르던 젊은 시절의 그는, 당시의 공기와 온기까지 함께 불러온 듯 생생했다. 오래된 기록은 단지 영상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했던 한 예술가의 숨결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창이었다. 객석에 앉은 이들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 스승의 음색을 다시 꺼내 들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스승이 남긴 음의 길을 따라 걸었다. 푸치니, 베르디, 비제, 도니체티의 아리아들이 차례로 무대를 채울 때마다, 마치 박 교수가 남긴 음악의 자취를 손끝으로 더듬듯 이어갔다. 듀엣의 호흡, 앙상블의 얽히는 선율, 한 음 한 음에 담긴 마음은 스승에게 바치는 가장 순수한 인사였다. 마지막 합창,쇼팽의 〈Tristezza〉, 이안삼의 〈내 마음 그 깊은 곳에〉는 그날 공연장의 마음을 그대로 비추는 문장이었다. 스승이 떠난 자리를 슬픔이 채웠으나, 그 슬픔은 곧 “그분이 남긴 빛을 잊지 않겠다”는 조용한 결심으로 바뀌었다. 한 예술가가 남긴 발자국 박세원 교수는 서울예고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거쳐 로마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서 수학한 후,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주역 테너로 활약했다. 그는 단지 노래하는 예술가를 넘어, 그 노래로 수많은 젊은 음악가들에게 꿈과 방향을 제시한 스승이었다. 옥관문화훈장, 대한민국방송대상, 음악협회상, 평론가협회 대상 등 화려한 업적 뒤에는, 제자들의 성장을 누구보다 기뻐하던 따뜻한 스승의 얼굴이 있었다. 남겨진 제자들의 기도…
[손영미 칼럼] 테너 박세원 교수 추모 헌정공연
‘한 시대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그가 남긴 빛, 그가 남긴 숨’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테너 박세원 교수 1주기 추모 헌정공연이 2025년 11월 25일(화)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에서 열렸다. 공연의 시작과 끝에는 제자들이 있었다. 제자들의 이중창과 앙상블, 그리고 마지막 합창까지…모든 순간이 스승을 향한 감사와 그리움으로 채워졌다. 공연 중간에는 생전 박 교수의 연주 영상이 상영되었는데, 특히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에서 알프레도 역으로 무대에 섰던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은 관객의 마음을 오래 머물게 했다. 극장은 잠시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해졌고, 이어진 박수는 그를 향한 깊은 존경의 울림이었다. 제자들이 선택한 프로그램은 마치 스승이 걸어온 예술적 발자취를 따라가는 듯했다. 푸치니와 베르디, 비제와 도니체티 그가 사랑했고 오랜 세월 무대에서 노래했던 오페라의 명장면들이 다시금 호흡을 얻었다. 음악 해설과 연주자들의 진심 어린 해석이 더해지며, 헌정공연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스승과 제자 사이의 깊은 인연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으로 완성되었다. 한 시대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어떤 목소리는 시간이 흘러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목소리를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이 걸어온 길과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서울대학교 성악과 교수로 오랜 세월 후학을 길러낸 테너 박세원 교수의 목소리가 바로 그러한 목소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