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K-가곡 슈퍼스타〉 성황리에 막 내려 – 36개국 126명 도전 – 한국 가곡이 세계의 목소리를 입었다.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KBS가 지난해에 이어 마련한 글로벌 가곡 경연 프로젝트 〈2026 K-가곡 슈퍼스타〉가 세계 성악가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두 번째 여정을 마쳤다. 지난 6월 시작된 1차 심사에는 세계 36개국에서 126명의 성악가가 도전했다. 브라질·이탈리아·독일·멕시코·루마니아·오스트리아·불가리아·라트비아 등 세계 곳곳에서 지원자가 몰렸고, 두 차례 심사를 거쳐 8개국 10명의 성악가가 최종 본선에 올랐다. 본선은 지난 8월 25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녹화됐으며, 9월 25일 KBS1을 통해 120분간 방송됐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참가자들이 한국 가곡을 대하는 깊이였다. 우리말을 정확하게 발음하는 데 머물지 않고 시어가 품은 정서와 여백까지 자신만의 음악적 해석으로 풀어냈다.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노래해 온 성악가들의 입에서 우리말이 흘러나왔다. “우리 금강산….” 낯선 언어를 외워 부르는 노래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그리움과 사랑, 자연과 역사,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이해하려는 시간이 배어 있었다. 세계의 목소리로 다시 태어난 우리 가곡 본선에서는 〈잔향〉, 〈연〉, 〈그리운 금강산〉, 〈밀양아리랑〉, 〈마중〉, 〈산아〉, 〈강 건너 봄이 오듯〉, 〈명태〉, 〈내 맘의 강물〉, 〈꽃 피는 날〉 등 한국 가곡의 다양한 작품들이 무대에 올랐다. 치열한 경연 끝에 대상은 루마니아 테너 제오르제 비반(George Vîrban)에게 돌아갔다. 정환호의 〈꽃 피는 날〉을 부른 그는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성악콩쿠르 1위 수상 경력을 지녔으며 독일 바이마르 국립오페라 오페라 스튜디오와 에센 알토극장 앙상블을 거쳤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마술피리〉 타미노 역 커버 캐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금상은 오스트리아 소프라노 이리데 마르티네스(Iride Martinez)가 차지했다. 한국 민요를 바탕으로 진규영이 작곡한 〈밀양아리랑〉을 불러 우리 민요 특유의 흥과 한을 자신만의 음악적 색채로 풀어냈다.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등 세계적인 성악가들과 협연한 경력을 지닌 성악가다. 은상은 라트비아 소프라노 카트리나 크룸파네(Katrina Krumpane)에게 돌아갔다. 이수인 시·곡의 〈내 맘의 강물〉을 노래한 그는 독일 베를린 국립오페라와 도이체 오퍼 베를린 솔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성신여대와 경희대에서 성악을 가르쳐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우리 가곡 특유의 서정과 그리움을 섬세한 호흡으로 표현했다. 동상은 독일 소프라노 안나 카타리나 그롤(Anna Katharina Groll)이 차지했다. 송길자 시, 임긍수 곡의 〈강 건너 봄이 오듯〉을 통해 기다림과 그리움, 봄을 향한 희망을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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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미의 감성클래식] 추석, 오래된 그리움 앞에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추석은 달이 가장 둥글어지는 계절이다. 들녘의 곡식이 고개를 숙이고 햇과일이 익어갈 무렵, 사람의 마음도 자연스레 자신이 걸어온 시간과 뿌리를 돌아본다. 한 해의 결실에 감사하고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 그러나 추석에는 풍요와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둥근 달을 바라보면 이상하게도 곁에 없는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우리의 기억이 가장 먼 곳까지 돌아가는 날, 추석은 오래된 그리움의 명절이기도 하다. 햇곡식과 과일을 정갈히 올리고 향 하나 피워 먼저 떠난 선대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제례(祭禮)란 어쩌면 떠난 이를 다시 불러오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조용히 되새기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 고요한 시간에 문득 잘 어울리는 음악이 있다.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다. 슈베르트와 구노의 작품과 함께 흔히 ‘세계 3대 아베 마리아’로 불려온 이 곡은 오랫동안 17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줄리오 카치니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러시아의 작곡가이자 류트 연주자였던 블라디미르 바빌로프(Vladimir Vavilov, 1925–1973)가 20세기에 작곡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 삽입되며 대중에게 더욱 친숙해졌다. 이 곡에는 길고 복잡한 서사도, 화려한 가사도 없다. 그저 ‘아베 마리아’라는 짧은 기도가 간절하게 반복된다. 그러나 바로 그 단순함 때문에 음악은 오히려 깊어진다. 낮고 절제된 음조에서 출발한 선율은 같은 음형을 기도하듯 되새기며 조금씩 음역을 높여간다. 가슴 밑바닥에 눌러두었던 감정이 한 겹 한 겹 풀려나듯 상승하다 마침내 절정에 이르면, 그것은 더 이상 노래라기보다 차마 말로 다 하지 못한 간절함이 소리가 되어 솟구치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낮고 잔잔하게 시작된 음은 제례상 위로 피어오르는 향연기처럼 천천히 번져 말로 다 전하지 못한 감사와 그리움을 보이지 않는 아득한 곳으로 실어 나른다. 그래서 이 곡은 성모 마리아를 향한 기도의 형식을 넘어, 듣는 이의 마음의 결에 따라 서로 다른 기억을 불러낸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며, 또 누군가에게는 오래 미뤄두었던 작별의 말이 된다. 반복되는 선율 사이의 깊은 여백에는 저마다 가슴속에 묻어둔 이름 하나가 조용히 자리 잡는다. 살아생전 미처 전하지 못한 말, 한 번 더 따스히 잡아보지 못한 손,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깨달은 사랑까지. 이 숭고한 음악 앞에서는 그 모든 미련과 아쉬움마저 하나의 기도가 된다. 한가위의 둥근 달 아래 우리는 조상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 기억의 끝에서 다시 만나는 것은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뿌리이자 정체성이다. 내가 있기까지 수많은 생이 있었고,…
[손영미의 공연 리뷰] 리얼리티 오페라 ‘기억의 향기’
– 존재의 귀환 – 잊어도 마음은 기억한다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오랜만에 바리톤 양준모 주연의 리얼리티 오페라 〈기억의 향기〉를 관람했다. 공명이 뛰어난 압구정 광림아트센터 장천홀에서 만난 이번 작품은 대극장 오페라의 화려한 스펙터클보다, 한 인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들여다보는 2인극이자 음악으로 쓴 모노드라마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탁월한 가창력과 묵직한 존재감을 지닌 양준모를 통해, 주인공 구무진의 기억에 아로새겨진 사랑과 상실, 그리고 다시 살아가려는 한 인간의 절박한 내면을 깊이 몰입하여 따라갈 수 있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이 마음을 따라다녔다. ‘사람은 무엇으로 자신을 기억하는가. 이름일까, 얼굴일까. 아니면 한때 깊이 사랑했던 누군가의 흔적일까.’ 빈 의자 하나에서 시작되는 기억 구무진은 한때 음악계를 주름잡던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러나 찬란했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는 지방 축제 음악을 만들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의 곁을 지키는 유일한 동거인은 인간이 아닌 AI ‘아카시아’다. 아카시아는 무심한 목소리로 데이터를 읊으면서도 조금씩 인간의 감정을 학습해 나간다. 그리고 작업실 한편, 옛 연인 미지가 앉아 있던 빈 나무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작품 속에서 나는 그 빈 의자를 오래 바라보았다. 사람이 떠나도 자리는 남는다. 어쩌면 상실이란 사람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머물던 자리가 계속해서 눈에 들어오는 일인지도 모른다. 무진은 아카시아의 도움을 받아 과거의 기억을 불러낸다. 그러나 기억은 위로가 되는 동시에 깊은 고통을 남긴다. 사랑했던 연인과 어머니, 빛나던 자신의 순간들이 되살아날수록 현재의 초라함은 더욱 선명해진다. 술에 취해 무너져 내리던 밤, 마침내 미지가 환영처럼 그의 방에 나타난다. 그 모습이 실체인지 기억인지, 혹은 무진의 절박한 그리움이 만들어낸 환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짧은 재회를 통해 두 사람이 생전에 미처 건네지 못했던 진심을 비로소 나눈다는 사실이다. 무진은 미지를 위해 노래한다, 〈기억의 향기〉를. 그리고 미지는 나지막이 말한다. “사라져도 향기로 여기에 있어.”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다시 모습을 감춘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서 사람이 떠나면 관계는 끝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과 함께 존재했던 ‘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기억의 향기〉는 떠나간 연인을 다시 불러내는 신파에 머물지 않는다. 무진이 기억을 하나씩 더듬으며 끝내 찾아가는 존재는 미지만이 아니다. 미지를 사랑했던 자기 자신, 음악을 사랑했던 자신, 그리고 아직 삶을 포기하지 않은 자신이다. 이 작품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여기에 있다. 기억을 과거로 퇴행하는 통로가 아닌, ‘현재의 나’에게 돌아오는 길로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사랑은 끝났어도 사랑했던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시간은 한 인간의 내면으로 스며들어 삶의 일부가 된다.…
[손영미의 사랑의 미학] 우리는 사람을 사랑하는가, 사랑하고 있는 나를 사랑하는가
– 칼립소를 떠난 오디세우스 – 사랑의 애도가 오래 걸리는 이유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사랑이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 질문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 사람을 사랑하던 나를 사랑했던 것일까…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이 질문과 가장 아름답게 겹쳐지는 인물이 칼립소다. 오디세우스는 바다를 떠돌다 오기기아섬에 닿아 칼립소와 7년을 보낸다. 여신 칼립소는 그를 사랑했고, 그가 머물기를 원했다. 심지어 인간이 끝내 이길 수 없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까지 그의 앞에 놓는다. 아름다운 여신, 풍요로운 섬, 늙지 않는 삶. 사랑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황홀한 조건처럼 보인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바닷가에 앉아 운다. 그의 눈이 향하는 곳은 칼립소가 아니라 바다 너머의 이타케다. 사랑하는데, 왜 떠나는가 이 장면은 사랑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사랑한다면 곁에 있어야 하는가. 떠난다면 사랑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 파고드는 사랑의 역설도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사랑에 빠진 인간은 상대만을 바라보는 것 같지만, 때로는 상대를 통해 일어난 자기 안의 욕망과 사랑의 상태에 더 깊이 사로잡힌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 속에는 어쩌면 “당신으로 인해 사랑하고 있는 이 나를 잃고 싶지 않다”는 고백도 숨어 있다. 그래서 사랑이 위험해지는 순간이 있다.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사랑의 배역을 맡은 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다. 상대는 한 인간에서 나의 외로움을 달래는 존재, 나의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 나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증명해주는 존재로 바뀐다. 그 순간 사랑의 주객은 뒤집힌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통해 완성되는 나의 욕망을 사랑하게 된다. 칼립소의 사랑에도 이러한 역설이 숨어 있다. 그녀는 오디세우스를 사랑하기에 붙잡는다. 그러나 그가 진정 원하는 곳은 이타케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곁에 두고 싶은 욕망과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삶으로 돌아가도록 놓아주는 일 사이에서, 사랑은 가장 어려운 시험을 받는다.…
[손영미 칼럼] 『님의 침묵』 100년, 다시 인제로 흐르다
– 제30회 만해대상 시상식 열려…평화·실천·문예로 이어진 만해 정신 – 박명성·정호승 문예대상, 박준영·안규리 실천대상, 니시모리 시오조 평화대상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만해 한용운 선사의 시집 『님의 침묵』 출간 100주년을 맞은 2026년, 그가 남긴 자유와…
[손영미 칼럼] 『님의 침묵』 100년, 다시 인제로 흐르다
– 제30회 만해대상 시상식 열려…평화·실천·문예로 이어진 만해 정신 – 박명성·정호승 문예대상, 박준영·안규리 실천대상, 니시모리 시오조 평화대상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만해 한용운 선사의 시집 『님의 침묵』 출간 100주년을 맞은 2026년, 그가 남긴 자유와…
[손영미의 공연 퓨리뷰 칼럼] 제19회 돌체 열린음악회, 송파구민과 함께하는 ‘음악, 그 이상의 감동’
– 시와 가곡이 짓는 따뜻한 집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가을은 음악을 닮았다. 뜨겁던 계절이 한 걸음 물러나고 바람 끝에 서늘한 음표 하나가 묻어오는 때, 사람의 마음도 문득 노래 한 곡에 오래…
[손영미의 클래식 음악 칼럼] 가을의 속삭임, 그리고 복도 끝에 남겨진 피아노 선율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가을이 오는 길목, 조금씩 신선해진 공기를 가르고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는 유난히 짙은 아련함이 배어 있다.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A Comme Amour〉를 듣고 있노라면, 투명하게 흐르는 아르페지오 위로 가만히 얹히는 선율이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어느 계절의 기억을 두드린다. 프랑스어 제목 A Comme Amour는 직역하면 ‘A는 Amour의 A’, 곧 ‘A는 사랑의 A’ 정도의 의미를 품고 있다. 우리에게는 오래도록 <가을의 속삭임>이라는 제목으로 사랑받아왔다. 원제에는 가을이라는 말이 없지만, 잔잔하면서도 쓸쓸한 그 서정이 가을의 온도와 닮아 있다. 이 아름다운 선율은 연주자인 클레이더만이 직접 작곡한 곡은 아니다. 그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시킨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폴 드 세네빌(Paul de Senneville)과 그의 음악적 동료들이 만들어낸 프렌치 팝 특유의 서정이 담긴 작품이다. 클레이더만의 음악은 정통 클래식의 무거운 형식에서 한 걸음 벗어나 클래식 피아노의 우아함과 대중음악의 친근한 선율을 이어주었다. 그래서 그의 피아노는 거대한 담론을 말하기보다, 지친 하루의 저녁과 오래된 사랑, 잊고 지냈던 한 사람과 한 계절을 조용히 불러낸다. 그리고 내게 이 곡은 언제나 한 장면으로 돌아온다. 중학교 3학년, 어느 해질녘이다. 나는 방과 후 아무도 없는 교실에 혼자 남아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면 학교는 낮과 전혀 다른 공간이 되었다. 운동장의 소음도 사라지고 긴 복도에는 늦은 햇살과 적막만 남았다. 그때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맑으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선율이었다. 나는 책을 덮고 소리가 흘러오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텅 빈 복도를 따라가다 음악실 앞에 이르면, 서울에서 교생실습을 위해 내려왔던 젊은 음악 선생님이 홀로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문을 열어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저 복도 끝에 가만히 앉아 들었다. 늦은 오후의 빛이 음악실 창문을 비스듬히 지나가고, 피아노 앞에 앉은 젊은 선생님의 등 뒤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이 어려 있었다. 그가 왜 혼자 남아 피아노를 쳤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선율에 어떤 사연이 숨어 있었는지도 몰랐다. 다만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게 알 것 같았다. 사람에게는 말로는 다 꺼내놓을 수 없는 마음이 있고, 때로 음악은 그 마음 대신 울어준다는 것을. 한 사람은 건반 앞에 앉아 자신의 외로움을 연주하고 있었고, 한 소녀는 복도 끝에 앉아 그 외로움의 이유도 모른 채 오래도록 듣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가 음악을 사랑하게 된 최초의 순간 가운데 하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손영미의 공연 클래식 칼럼] 네 개의 악기가 하나의 숨이 될 때
– 2026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 파씨오 콰르텟을 듣고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Passio’는 라틴어로 수난, 고통, 열정의 의미를 함께 품고 있는 말이다. 영어 ‘Passion’의 어원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뜨거운 열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견뎌야…
[손영미 영화 리뷰 칼럼] 인생이라는 오디세이, 당신의 이타케는 어디인가
– 호메로스에서 현대 스크린까지, 3천 년을 건너온 귀환의 철학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지난 8월 5일 국내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연일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며 흥행의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개봉 9일째인 14일 기준 누적 관객 약 285만 명. 3천 년 전 쓰인 고전이 첨단 영상의 시대에 다시 대중을 극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다는 사실부터 흥미롭다.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을 마친 영웅 오디세우스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는 고향 이타케로 향한다. 그러나 전쟁은 끝났어도 그의 진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신들의 분노와 거대한 폭풍, 괴물과 유혹, 죽음과 망각이 그의 귀향을 가로막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트로이에서 이타케까지는 20년을 떠돌아야 할 만큼 먼 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호메로스는 왜 한 인간을 그토록 오랫동안 바다 위에 붙잡아 두었을까. 그 질문에서 『오디세이아』는 모험담을 넘어 인간에 대한 철학이 된다. 전쟁의 영웅에서 한 인간으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기원전 8세기경 성립된 것으로 알려진 서사시다. 『일리아스』가 트로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노래한다면, 『오디세이아』는 전쟁이 끝난 뒤 한 인간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전쟁 10년, 귀향 10년. 오디세우스는 무려 20년 동안 집을 떠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귀향을 늦춘 것은 단지 성난 바다와 신들의 방해만이 아니다. 그를 붙잡은 것은 인간 안에 숨어 있는 욕망과 교만, 호기심과 쾌락, 망각이었다. 그래서 그의 항해는 지리적 이동이라기보다 인간이 자신에게 돌아가기까지 통과해야 하는 내면의 지도에 가깝다. 전쟁터에서 적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어쩌면 자기 욕망을 이기는 일이다. 『오디세이아』가 3천 년을 살아남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칼립소, 사랑이라는 이름의 망각 그의 귀향을 가장 오래 붙잡아 둔 존재는 여신 칼립소다.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섬 오기기아에서 7년을 보낸다. 그녀는 그에게 사랑과 안락을 주고, 심지어 불멸까지 약속한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탐낼 법한 제안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밤마다 바닷가에 앉아 이타케를 바라보며 운다. 칼립소라는 이름에는 ‘감추다’라는 어원이 담겨 있다. 그녀는 오디세우스를 세상으로부터 감추고, 시간으로부터 감추며, 마침내 그 자신으로부터도 감추려 한다. 여기서 사랑의 역설이 생긴다. 사랑은 상대를 곁에 두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길까지 막아 버린다면 사랑은 보호가 아니라 아름다운 감금이 될 수도 있다. 오디세우스가 버린 것은 여신이 아니라 망각이었다. 그는 영원히 사는 것보다 유한한 인간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길을 택한다. 키르케, 인간 안의 야성을 마주하다 마녀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만들어 버린다. 이 장면은 『오디세이아』에서 가장 기괴하면서도 상징적이다. 인간이 짐승으로 변한다는 것은 단순한 마법이 아니다. 욕망에 자신을 내맡길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이성과 품위를 잃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키르케는 단순한 악녀가 아니다. 이후 그녀는 오디세우스를 돕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어떤 유혹과 실패는 인간을 파괴하지만, 어떤 실패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오디세우스는 키르케를 지나며 세상을 이기는 지혜보다 자기 안의 욕망을 다루는 지혜를 배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