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차조 (주)KN541회장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차조 칼럼니스트] 깨어난 소비자 한 사람이 새로운 시장의 출발점이다 시장은 오랫동안 소비자를 끝자리에 세워 왔다. 생산자는 먼저 만들고, 광고는 욕망을 자극하고, 유통은 가격을 흔들고, 브랜드는 판단을 대신했다. 소비자는 마지막에 불려 나왔다. 고르라 했다. 사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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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차조 특별 칼럼_4」 KN541, 이제 선언을 구조로 증명해야 한다
▲사진=정차조 (주)KN541회장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차조 칼럼니스트] 한 바퀴를 굴리는 힘은 말이 아니라 실행의 순환에서 나온다 선언은 중요하다. 그러나 선언만으로 시장은 바뀌지 않는다. 구호만으로 소비는 움직이지 않는다. 비전만으로 조직은 굴러가지 않는다. 시대를 여는 조직은 반드시 증명해야 한다.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손영미의 클래식 음악 칼럼] 가을의 속삭임, 그리고 복도 끝에 남겨진 피아노 선율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가을이 오는 길목, 조금씩 신선해진 공기를 가르고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는 유난히 짙은 아련함이 배어 있다.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A Comme Amour〉를 듣고 있노라면, 투명하게 흐르는 아르페지오 위로 가만히 얹히는 선율이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어느 계절의 기억을 두드린다. 프랑스어 제목 A Comme Amour는 직역하면 ‘A는 Amour의 A’, 곧 ‘A는 사랑의 A’ 정도의 의미를 품고 있다. 우리에게는 오래도록 <가을의 속삭임>이라는 제목으로 사랑받아왔다. 원제에는 가을이라는 말이 없지만, 잔잔하면서도 쓸쓸한 그 서정이 가을의 온도와 닮아 있다. 이 아름다운 선율은 연주자인 클레이더만이 직접 작곡한 곡은 아니다. 그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시킨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폴 드 세네빌(Paul de Senneville)과 그의 음악적 동료들이 만들어낸 프렌치 팝 특유의 서정이 담긴 작품이다. 클레이더만의 음악은 정통 클래식의 무거운 형식에서 한 걸음 벗어나 클래식 피아노의 우아함과 대중음악의 친근한 선율을 이어주었다. 그래서 그의 피아노는 거대한 담론을 말하기보다, 지친 하루의 저녁과 오래된 사랑, 잊고 지냈던 한 사람과 한 계절을 조용히 불러낸다. 그리고 내게 이 곡은 언제나 한 장면으로 돌아온다. 중학교 3학년, 어느 해질녘이다. 나는 방과 후 아무도 없는 교실에 혼자 남아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면 학교는 낮과 전혀 다른 공간이 되었다. 운동장의 소음도 사라지고 긴 복도에는 늦은 햇살과 적막만 남았다. 그때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맑으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선율이었다. 나는 책을 덮고 소리가 흘러오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텅 빈 복도를 따라가다 음악실 앞에 이르면, 서울에서 교생실습을 위해 내려왔던 젊은 음악 선생님이 홀로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문을 열어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저 복도 끝에 가만히 앉아 들었다. 늦은 오후의 빛이 음악실 창문을 비스듬히 지나가고, 피아노 앞에 앉은 젊은 선생님의 등 뒤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이 어려 있었다. 그가 왜 혼자 남아 피아노를 쳤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선율에 어떤 사연이 숨어 있었는지도 몰랐다. 다만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게 알 것 같았다. 사람에게는 말로는 다 꺼내놓을 수 없는 마음이 있고, 때로 음악은 그 마음 대신 울어준다는 것을. 한 사람은 건반 앞에 앉아 자신의 외로움을 연주하고 있었고, 한 소녀는 복도 끝에 앉아 그 외로움의 이유도 모른 채 오래도록 듣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가 음악을 사랑하게 된 최초의 순간 가운데 하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정차조 특별 칼럼_2」 생활이 시장을 이길 때 KN541이 열린다
– 국민식사면, 국민커피, 당차, 데티칸 치약이 만드는 소비생산의 킬러 콘텐츠 ▲사진=정차조 (주)KN541회장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차조 칼럼니스트] 시장은 오래도록 사람의 삶을 상품의 노예로 만들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씻는 것, 바르는 것, 가족이 함께 쓰는 것까지 모두 거대한 브랜드 질서 안에 묶어 두었다. 사람들은 필요해서 소비하는…
「정차조 특별 칼럼_1」 KN541, 한 바퀴 굴러야 시대가 열린다
– 소비생산 구조로 가는 온라인 전환의 문턱에서 ▲사진=정차조 (주)KN541회장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차조 칼럼니스트] 모든 문명은 처음부터 거대한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작은 바퀴 하나가 움직인다. 그 바퀴가 한 번 굴러가면 길이 생기고, 길이 생기면 흐름이 생기고, 흐름이…
[손영미의 공연 클래식 칼럼] 네 개의 악기가 하나의 숨이 될 때
– 2026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 파씨오 콰르텟을 듣고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Passio’는 라틴어로 수난, 고통, 열정의 의미를 함께 품고 있는 말이다. 영어 ‘Passion’의 어원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뜨거운 열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견뎌야…
[정봉수 칼럼] 최근 대법원 판례에 따른 통상임금 판단기준과 가산수당 산정
–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의 변화와 실무상 쟁점 – ▲사진=정봉수 노무사, 강남노무법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정봉수 칼럼니스트] I. 서론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연차유급휴가수당, 해고예고수당 등 근로기준법상 여러 법정수당을 산정하는 기준임금이다. 따라서 어떤 임금항목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는 기업의 임금체계와 인건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근로자에게는 법정수당의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통상임금에 관한 법리는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오랫동안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특히 지급일 현재 재직 중일 것을 요구하는 재직조건이나 일정 근무일수를 충족할 것을 요구하는 조건이 붙은 임금은 ‘고정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2024년 12월 19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에서 ‘고정성’을 제외하고, 통상임금을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으로 재정립하였다. 이후 재직조건부 상여금, 출근율 또는 근무일수 조건부 상여금, 성과급 등에 관한 후속 판결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통상임금 법리가 구체화되고 있다. 이하에서는 최근 판례를 중심으로 새로운 판단기준과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수당 산정의 실무상 쟁점을 살펴본다. II. 통상임금 판단기준의 변화 1. 통상임금의 법적 개념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 제1항은 통상임금을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이 문언과 통상임금의 기능에 충실하게 해석하여,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이라고 보았다. 여기에서 핵심은 실제로 얼마를 받았는지 또는 지급조건이 실제로 성취되었는지가 아니라, 근로자가 약정된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할 경우 그 대가로 지급하기로 객관적으로 정해진 임금인지 여부이다. 통상임금은 실제 근로성과를 사후적으로 평가하는 임금이 아니라 연장·야간·휴일근로를 하기 전에 소정근로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기준임금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2. ‘고정성’ 요건의 폐기 종전 판례는 통상임금 판단에서 정기성·일률성과 함께 고정성을 독립적인 요건으로 보았다. 그 결과 지급일 재직조건, 일정 출근율 조건, 근무일수 조건 등이 붙은 경우에는 지급 여부가 사전에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통상임금성이 부정되곤 하였다. 대법원 2024. 12. 19. 선고 2020다247190 전원합의체 판결 및 같은 날 선고된 2023다302838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러한 고정성 법리를 변경하였다. 임금에 조건이 붙어 있다는 사정이나 그 조건의 성취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만으로 통상임금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조건은 해당 임금이 실제로 소정근로의 대가인지, 정기성과 일률성을 갖추었는지를 판단하는 하나의 요소로 고려될 수 있다. 3. 새로운 판례 법리의 적용범위 대법원은 판례 변경이 임금체계와 집단적 근로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새로운 법리를 원칙적으로 2024년 12월 19일 이후의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2024년 12월 19일 이후 제공된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에 대한 법정수당은 새로운 통상임금 범위를 기준으로 산정해야 한다. 다만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당시 이미 법원에 계속 중이면서 변경된 법리가 재판의 전제가 되어 통상임금 해당 여부가 다투어지고 있던 당해 사건 및 병행사건에는 새로운 법리가 소급 적용된다. 그러므로 단순히 임금채권의 소멸시효가 3년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근로자에 대하여 2024년 12월 19일 이전 기간까지 일률적으로 재정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기간의 재정산 여부는 소송 계속 여부와 청구의 기초가 된 임금항목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여 판단해야 한다. III. 주요 임금항목에 대한 최근 대법원 판례 1. 재직조건부 정기상여금 재직조건이란 상여금 지급일 현재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상여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조건을 말한다. 종전에는 이러한 조건이 있으면 지급일 전에 퇴직한 근로자에게는 상여금이 지급되지 않으므로 고정성이 없다는 이유로 통상임금성이 부정되는 경우가 있었다. 대법원 2025. 1. 23. 선고 2019다204876 판결은 재직조건이 붙은 정기상여금도 기본급 등에 연동하여 일정한 금액을 일정한 주기로 지급하는 등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라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재직조건 자체의 효력과 통상임금 해당 여부는 구분하여 판단해야 한다. 재직조건이 유효하더라도 그 조건의 존재만으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기업이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지급일 현재 재직자에 한하여 지급한다”는 문구를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 실제 판단에서는 지급주기, 산정기준, 지급대상, 소정근로와의 관련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2. 출근율·근무일수 조건이 붙은 상여금 대법원 2024. 12. 19. 선고 2023다302838 전원합의체 판결은 일정 근무일수를 충족해야 지급되는 임금에 대해서도, 그 근무일수 조건이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근로자라면 충족할 수 있는 범위, 즉 소정근로일수 이내로 정해진 조건이라면 그러한 조건만으로 통상임금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 법리는 대법원 2025. 2. 20. 선고 2021다216957 판결에서도 확인되었다. 기본급 등에 연동하여 일정한 금액을 일정 주기로 지급하는 상여금에 출근율 조건이나 재직조건이 붙어 있더라도, 그 상여금이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라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 실제 출근율이 낮아 해당 근로자가 상여금을 전부 지급받지 못한 경우에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기준임금으로서의 통상임금성이 당연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반면 지급조건이 소정근로의 범위를 넘어 추가적인 근로제공이나 별도의 성과 달성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소정근로 대가성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따라서 “조건이 붙어 있으면 모두 통상임금” 또는 “조건이 붙어 있으면 모두 통상임금이 아님”과 같은 일률적인 접근은 적절하지 않다.…
[손영미 영화 리뷰 칼럼] 인생이라는 오디세이, 당신의 이타케는 어디인가
– 호메로스에서 현대 스크린까지, 3천 년을 건너온 귀환의 철학 ▲사진=손영미 극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강남 소비자저널 [강남 소비자저널=손영미 칼럼니스트] 지난 8월 5일 국내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연일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며 흥행의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개봉 9일째인 14일 기준 누적 관객 약 285만 명. 3천 년 전 쓰인 고전이 첨단 영상의 시대에 다시 대중을 극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다는 사실부터 흥미롭다.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을 마친 영웅 오디세우스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는 고향 이타케로 향한다. 그러나 전쟁은 끝났어도 그의 진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신들의 분노와 거대한 폭풍, 괴물과 유혹, 죽음과 망각이 그의 귀향을 가로막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트로이에서 이타케까지는 20년을 떠돌아야 할 만큼 먼 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호메로스는 왜 한 인간을 그토록 오랫동안 바다 위에 붙잡아 두었을까. 그 질문에서 『오디세이아』는 모험담을 넘어 인간에 대한 철학이 된다. 전쟁의 영웅에서 한 인간으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기원전 8세기경 성립된 것으로 알려진 서사시다. 『일리아스』가 트로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노래한다면, 『오디세이아』는 전쟁이 끝난 뒤 한 인간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전쟁 10년, 귀향 10년. 오디세우스는 무려 20년 동안 집을 떠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귀향을 늦춘 것은 단지 성난 바다와 신들의 방해만이 아니다. 그를 붙잡은 것은 인간 안에 숨어 있는 욕망과 교만, 호기심과 쾌락, 망각이었다. 그래서 그의 항해는 지리적 이동이라기보다 인간이 자신에게 돌아가기까지 통과해야 하는 내면의 지도에 가깝다. 전쟁터에서 적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어쩌면 자기 욕망을 이기는 일이다. 『오디세이아』가 3천 년을 살아남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칼립소, 사랑이라는 이름의 망각 그의 귀향을 가장 오래 붙잡아 둔 존재는 여신 칼립소다.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섬 오기기아에서 7년을 보낸다. 그녀는 그에게 사랑과 안락을 주고, 심지어 불멸까지 약속한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탐낼 법한 제안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밤마다 바닷가에 앉아 이타케를 바라보며 운다. 칼립소라는 이름에는 ‘감추다’라는 어원이 담겨 있다. 그녀는 오디세우스를 세상으로부터 감추고, 시간으로부터 감추며, 마침내 그 자신으로부터도 감추려 한다. 여기서 사랑의 역설이 생긴다. 사랑은 상대를 곁에 두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길까지 막아 버린다면 사랑은 보호가 아니라 아름다운 감금이 될 수도 있다. 오디세우스가 버린 것은 여신이 아니라 망각이었다. 그는 영원히 사는 것보다 유한한 인간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길을 택한다. 키르케, 인간 안의 야성을 마주하다 마녀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만들어 버린다. 이 장면은 『오디세이아』에서 가장 기괴하면서도 상징적이다. 인간이 짐승으로 변한다는 것은 단순한 마법이 아니다. 욕망에 자신을 내맡길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이성과 품위를 잃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키르케는 단순한 악녀가 아니다. 이후 그녀는 오디세우스를 돕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어떤 유혹과 실패는 인간을 파괴하지만, 어떤 실패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오디세우스는 키르케를 지나며 세상을 이기는 지혜보다 자기 안의 욕망을 다루는 지혜를 배운다.…
[인인칼럼 유준형] AI와 명강사: 밀어내는 건 인공지능이 아니라, AI 쓰는 강사다.
[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강의를 1시간 앞두고 노트북을 열었다. 전날 밤 인공지능에게 맡겨 뽑아낸 슬라이드가 45장. 도표는 정확했고 문장은 매끄러웠다. 흠잡을 데가 없어서 오히려 손이 멈췄다. 자료를 만든 인공지능은 강의실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앞줄에 누가 앉는지, 그중 몇이 회사에서 등 떠밀려 나왔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그 가운데서 19장을 지웠다. 무엇으로 채울지는 문을 열고 나서 정했다. 그날 강의가 끝나고 한 사람이 남아 물었다. 남은 26장 어디에도 없던 질문이었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쓰는 사람이 쓰지 않는 사람을 대체한다. 하버드경영대학원 카림 라카니 교수의 이 진단은 이제 강사들에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휴넷이 국내 371개 사 인사·교육 담당자에게 물은 결과, 2025년 기업이 가장 많이 투자한 교육 분야는 AI 교육으로 33.7%였다. 이듬해 중점을 둘 분야를 묻자 같은 항목이 50.9%로 올라섰다. 한 해 사이 17% 포인트다. 강단의 지형이 바뀌는 속도가 이 숫자에 다 들어 있다. 어떤 강사에게는 자리가 늘고, 어떤 강사에게는 줄어든다는 말이기도 하다. 강사가 두려워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다. 어제까지 나와 같은 교재를 쓰던 사람이 먼저 달라지는 일이다. 1,200년 전 당나라의 한유는 「사설(師說)」에서 스승을 이렇게 정의했다. 도를 전하고, 학업을 주고, 의혹을 풀어주는 사람. 전도(傳道)와 수업(授業)과 해혹(解惑)이다. 이 셋을 오늘의 강의실에 놓으면 사정이 선명해진다. 인공지능은 전도와 수업에 이미 깊숙이 들어왔다. 자료를 모으고, 수준에 맞춰 풀어 쓰고, 사례까지 지어낸다. 그러나 해혹 앞에서 멈춘다. 의혹이 일반명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늘 셋째 줄에 앉은 한 사람이 품은, 그 사람만의 막힘이다. 오래 강단에 서다 보면 유독 필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다 알아들어서가 아니다. 어디서부터 막혔는지 몰라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다. 그 표정은 데이터로 오지 않는다. 앞에 선 강사의 눈에만 들어온다. 한유는 의혹을 품고도 스승을 따르지 않으면 그 의혹이 끝내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인공지능은 던져진 질문에 답한다. 묻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알아보지는 못한다. 같은 글에서 한유는 한 걸음 더 갔다. 스승이라고 반드시 제자보다 현명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도를 먼저 들었는가, 그 분야에 정통한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 문장을 요즘 강사들에게 건네고 싶다. 기계가 나보다 많이 안다는 사실은 강단에 설 자격을 거두어 가지 않는다. 다만 아는 양으로 겨루던 시절이 저물었다. 그렇다면 도구를 잘 쓰면 명강사가 되는가? 여기서부터 길이 갈린다. 한국기술교육대 능력개발교육원은 ‘AI 교사·강사 아카데미’를 통해 인공지능 역량을 갖춘 훈련교사 1,900명을 새로 길러내고, 1만 명의 교사·강사에게 역량 강화 교육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해마다 보수교육을 받는 직업훈련 교사·강사가 6만여 명이다. 국가가 강사라는 직업을 통째로 다시 배치하는 중이다. 다만 강사를 길러내는 자리에 여러 해 있다 보니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이 있다. 도구를 빨리 익히는 사람과 끝내 좋은 강사가 되는 사람이 좀처럼 겹치지 않는다. 몇 해 지나면 도구를 못 다루는 강사는 드물어진다. 무엇을 쥐었느냐보다 누가 쥐었느냐가 남는 날이 온다. 연구는 오래전에 답을 내놓았다. 좋은 수업의 조건을 가르치는 쪽과 배우는 쪽에 나란히 물은 조사에서, 양쪽 모두가 1순위로 꼽은 것은 가르치는 사람의 열정이었다. 강의 내용도 자료의 완성도도 그 뒤였다. 배우는 쪽은 그다음으로 교수자의 태도와 학생 수준에 대한 고려를 들었다. 수업 만족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상호 간의 의사소통을 꼽은 연구도 있다. 목록 어디에도 슬라이드 장수는 없었다. 열정은 준비량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오늘 이 사람들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무겁게 여기는지가 목소리와 시선에 묻어날 따름이다. 준비를 대신해주는 도구는 생겼다. 준비한 것을 버리는 판단까지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그날 남아 있던 사람이 내게 던진 질문은 이랬다. 선생님은 이걸 직접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컴퓨터를 만진 지 사십여 년이고, 요즘은 남에게 AI 쓰는 법을 가르치며 산다. 그런데도 말이 막혔다. 슬라이드에는 근거가 있었고 사례도 넉넉했지만, 그 대목만은 내 것이 아니었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이 다음 강의를 바꿨다. 기계는 그런 질문을 받지 않는다. 궁색해질 일도, 얼굴이 붉어질 일도 없다. 강단에 서는 사람만 부끄러울 수 있다. 그 부끄러움이야말로 기계가 끝내 갖지 못할 강사의 자산이 아닐까? 이달 초 부산 벡스코에서 교육부와 한국교육방송공사,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함께 연 인공지능 활용 교육 콘퍼런스에 교원 1만 명이 모였다. 이틀 내내 그들이 붙들고 있던 물음은 어떤 도구가 좋으냐가 아니었다. 이 도구를 내 교실에 어떻게 앉힐 것이냐였다. 도구를 묻는 사람은 도구에서 멈추고, 교실을 묻는 사람은 교실로 간다. 그 사소해 보이는 차이가 몇 해 뒤 강단의 명단을 가른다. 다음 강의에서 한 가지만 해보시기를 권한다. 인공지능이 만들어준 자료에서 10장을 지우는 것이다. 아까울 것이다. 정확하고 매끈한 10장이니까.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아는 사람을, 우리는 오래전부터 명강사라 불러왔다. 지운 자리에 당신은 무엇을 넣겠는가? 다음 회에는 배우는 쪽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인공지능이 무엇이든 알려주는 시대에, 사람은 왜 여전히 사람에게 배우러 오는가. 참고자료 1. 한유(韓愈), 「사설(師說)」. “師者, 所以傳道授業解惑也”, “師不必賢於弟子”. 2. Karim R. Lakhani, “AI Won’t Replace Humans — But Humans With AI Will Replace Humans Without AI”, Harvard Business Review / Digital, Data, Design Institute at Harvard, 2023. 3. 휴넷, 「2026 기업교육 전망」 설문조사(국내 371개 사 인사·교육 담당자 대상), 2025. 11. 4.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능력개발교육원, ‘AI 교사·강사 아카데미’ 운영 현황, 2026. 5. 「교수자와 학습자 의견 비교를 통한 좋은 수업의 특성 분석」,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제23권 제2호. 필자 | 유준형 박사(Ph.D).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경영학(MBA)/전자계산학/산업공학/사회복지학 다양한 학문을 접하고, 40여 년을 IT 현장에서 보낸 베테랑 엔지니어이다. 현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이자 고려대 명강사 최고위과정 대표강사로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으며, 블로그/SNS/유튜브 온라인 마케팅과 AI 활용을 주제로 1,500여 회 강단에 섰다. 『명강사를 위한 AI 활용 실무』, 『AI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AI와 사회복지』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삽화=필자 기획·OpenAI ChatGPT 생성한 이미지 –…
[인인칼럼 유준형] AI와 청문회(2): 그때 이렇게 물었더라면, 그들은 답하지 못했다.
[강남 소비자저널=유준형 컬럼니스트] 지난주 밤, 청문회 영상을 20개쯤 이어서 봤다. 유튜브가 알아서 다음 영상을 물어다 주는 통에 새벽 3시가 넘도록 화면을 껐다 켰다 했다. 나는 축구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평생 책상 앞에서 자료를 읽고 글을 써 온 사람이다. 그런데도 눈을 떼지 못했다. 자꾸 화면 밖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새벽 운동장에서…
